난 원래 그래라는 말은 엄청난 거짓말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상황들로 대변되는 경험들이 우리 주변을 득실거리기 때문에 그것을 겪곤난 후에는 한 번쯤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의 너와 과거의 너는 다른가'
어떤 책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이 형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계들로 인해 자신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여러 사람들과 어떤 고난의 상황들 속에서 날카ㅂ로워지기도, 부드러워지기도 했던 것 같다. 비록 더 순해지기는 힘들었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첫'은 어떠했는가. 원래라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어떤 성격, 행동 더 포괄적인 성향, 버릇 같은 것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환경 들이냐에 따라 수없이 변모된다. 그런 의미에서 '첫'은 중요하다. 변함 속에서 어느 정도 기틀이 있으니까.
정체성과 주체. 둘의 차이점을 아직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모종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정체성이란 것은 우리가 죽을때까지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종의 가면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으로 가면을 만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나조차 나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지 모르는 무언의 두려움, 걱정의 작용이 그런 또 다른 거울이자 가면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말이 좀 난잡하고 딱히 연구나 경험을 거치지는 못했지만 나는 '가면을 쓴다'라는 나름 보편적인 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어디에서 기인하느냐, 결과로써 가면은 어떻게 존재성을 지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정체성을 알아가기 위해 너무 많은 가면에 가려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시뮬라크룸이 어느 순간 자신을 대체해버려 주객전도의 상황이 될 수는 없으니까 시뮬라크룸과 같은 유사, 겉모습은 인간이 양심과 마음을 가진 이상 알아챌 수 있기에.
결국 개인의 정체성은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