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자각하는 서사·기억의 자리

이석원 <보통의 존재>

by 빈빈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이 말에 가끔은 고통에 빠지곤 한다




내가 보통의 존재를 처음 접했던, 그와 눈인사를 하게 된 것은 2년 전 과사무실에서였다. 한 학년 선배였던 누나가 조교일을 하고 있었던 터라 꽤 자주 드나들던 사무실 탁자에 선배는 이 책을 보고 있었다. 빛날 듯 말듯한 노란 개나리처럼 물든 이 책에 적혀있던 한 마디 '보통의 존재'.


삶이란 무릇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도 큰 폭에서는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거니와 그것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잣대가 생기고 어떤 제도나 틀에 갇히거나 때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며 나와 멀어지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시공간의 겹들. 현대사회에서 '일상'은 단순히 그저 흘러가는 나이테가 아닐지도 모른다. 넘쳐흐르는 욕망으로부터, 힘으로부터, 안녕으로부터 때론 우울, 분노 등을 포함한 감정의 영감들은 자신을 사유하고 성찰하며 기록하기에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보통의 존재는 그 한 겹 한 겹이 소중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자신을 자각하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은 관계·사회 모습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개인과 집단 집단과 개인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일괄 비슷한 양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보통의 존재는 사회 속의 이석원 이석원 안의 이석원을 담담하게 발화시킨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말하는 일인칭의 그는 다양한 양상의 글들을 통해 은근슬쩍 '미련'이라는 마침표를 긋는다.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 혈연의 관계지만 이해할 수 없는 가족과의 충돌, 오십이 다돼가지만 아직도 애매모호한 친구라는 존재. 이런 사소함 또는 일상에서 느껴졌던 미련들을 말이다.

··

어떤 감정이든 그 감정이 과잉되고 반복되면 난치성의 현상들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반복되는 일상 속의 난치성 감정은 어떤 생각의 폭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일종의 전기와도 같은 보통의 존재는 유년기와 청년 그리고 오십을 바라보는 그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조금 외롭기도 하다. 어쩌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존재를 어렵렴풋이 느껴버린 아이의 울음이라고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거나 놓쳐버린 생각들을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 그가 얼마나 일상관념론자로서 자신과 주변에 투철했는지 우리는 보통의 존재 속에서 얄팍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그는 책에 들어가기 전 표지 뒤에 자신을 나이 탐험가라고 지칭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을 그는 제대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한계(죽음)를 극복하지만 이석원은 종이에 하나씩 적어나갔던 이 보통의 존재로 그것들을 극복하려 했을 것이다. 종이가 불에 타 재로 변해 날아가듯, 작은 입자로 갈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를 아는 그는 이제 조금은 더 자신에 충실해질 것이다. 밴드 생활이라는 또 다른 삶의 단편을 내려놓고 그가 지칭하는 삶이라는 연극에서 극작가로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의 청춘을, 슬픔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