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청춘을, 슬픔을 아시나요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by 빈빈

사람에게 있어서 슬픔의 감정 그 상황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다가온다




나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건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또한 좌절이 때론 우울이 발현되는 그 시간들의 지속점들이니까. 인생이 항상 푸르지는 않다 때론 앞에 보이지 않는 깜깜함과 분노의 바다로 붉게 일그러지기도 하는데 왜 청춘의 청자가 이리 거슬리는지.


슬픔을 예기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순간에 자신을 파탄시키는 슬픔이야말로 나를 형성시키는 매력적인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실과 사강 사강과 세실. 1인칭 시점의 교묘하게 희석된 감정의 충돌 속에서 사강 또한 자신의 유년기는 그녀의 소설속에서 마음껏 분출된다. 반복된 쾌락, 반성, 분노 등으로 자신의 슬픔을 정의하는 사강 또는 세실.



그때까지 나는 난폭하고 이기적인, 특히 청춘에 열중한 나머지 그 속에 숨겨진 자기들의 공허함에 대한 변명이나 비극의 테마를 찾아내려는 그런 학생들은 피하고 있었다. P14



당신의 청춘이 이기심으로 둔갑한 개인주의로 변모됐을 때, 세실은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네가 지금 하는 것은 너의 자유의지니? 무엇인가 갈망하지 않고 있는 것이야? 그리곤 너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둘러싸여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곤 있지 않니? 이런 세실의 발언은 시대를 불문하고 나름의 청춘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발언이라고 보는데 소설 속에서 그녀의 생각, 행동 등이 결부 짓는 취향이 뚜렷했기에 나에겐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적어도 사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의 청춘이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찰나의 순간으로 덧없이 지나갈 것인지 그리고 그 허무주의 속에서 나의 자유로움만이 진정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을.



"넌 연애에 대해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것은 각기 독립된 감각의 연속은 아니야."

그러나 나의 사랑은 모두 그랬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얼굴이며 행동, 키스했을 때의 갑작스런 감동······.

내가 갖고 있는 추억은 다만 이런 것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야." 하고 안느가 말했다.

"그곳에는 끊임없는 애정과 정다움이 있고, 어떤 사람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는 것 그리고 너로서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P43



아쉽게도 나는 안느 아주머니의 충고인지 조언인지 모를 이 말들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세실의 말대로 너무 이지적이고 귀족의 풍채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녀가 가진 사랑의 사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사랑이 부재를 느끼고 끊임없는 애정의 연속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뫼비우스의 띠 사이에서 슬픔이 양산되고 그 흔적이 트라우마처럼 나타나곤 하는데 부재로서는 그런 아픔들이 오히려 그 구멍들을 채웠기 때문이다.


세실에게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과 자신 주변모든 것에 이미 너무 안이함을 느끼곤 정의내려 버리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은 마치 쳇바퀴가 돌아가듯이 변했고 이야기의 말미에도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세실은 그녀가 지나온 시간들은 인정하고 '현실적'인 상황을 자유와 행복이라고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토록 안느를 경계했는지, 자신을 위협하는 대항마로 취급할 이유가 있었는지 이미 자신과 클레몽은 이런 존재일 뿐 우리는 나은 삶, 우리의 풍경 주변에 존속하는 것들을 계속 유지시키고 싶었는지 말이다. 세실과 클레몽은 쾌락주의에 빠진 욜로족이었지만 안느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개척할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안느가 있었기에 세실은 슬픔이란 것을 마주하고 정중하게 인사할 수 있었기에 안느가 이 소설에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PS

안느 아주머니 세실을 용서해 주세요. 그녀의 악랄함과 감정의 발칙함은 이미 형성된 그녀 자체니까요. 사람이 변하기란 쉽지 않아요 안느. 당신의 주변과 세실의 주변은 이미 다른 거예요 틀리다고 판단할 수도 없죠. 그건 마치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지만 결코 모래사장과 바다는 독립된 존재로서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클레몽을 덜 사랑했다면.. 당신이 비극의 앞날을 그 예기치 못한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람을 너무 사랑하지는 마세요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일 뿐 어떤 그 이상의 감정은 슬픔, 불안, 우울, 강박 더 쉴 새 없는 또 다른 감정들을 야기시키기도 하니까. 세실은..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갔어요. 그녀는 생각 외로 단순한 사람이에요 목적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게 그녀의 외로움 때문인지 애정의 소진증후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든 것이 예전처럼 처음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세실도 클레몽도 엘자도 시릴도 우리 모두는 다 하늘로 돌아가겠죠 안느처럼 우리는 모두 소멸될 존재니까..


여름이 시작될 무렵 갔던 별장과 바다, 그곳에서 만난 나의 왕자 시릴, 아버지의 옆에 있던 야릇했던 사람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태양과 바다의 철렁거림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다. 슬픔에게 인사하는 동시에 슬픔 또한 작별을 한다. 나의 청춘도 슬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