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본 뒤 국민 신문고에 민원을 넣다
나는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기분이 좋지 않은 경험들이 있더라도 금방 잊기 바련이다. 살다보면 자연스레 감정 소모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다보니 어느 순간 감정의 센서가 꼭 필요한 일에만 반응하도록 단순하게 작동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은 이 연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불쾌했고 처음으로 크게 화가 났던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 연재글(4회)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곳이다. 신입 사원 연봉을 제시하면서 'AI 분야는 아직 레퍼런스가 없어서 모두가 신입'이라고 주장했던 SI 중소기업이다. 면접을 보고 난 뒤 면접관이었던 여성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나에게 내부적인 논의를 한 결과 2차 면접을 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고는 내가 연락을 안 받을까봐 너무 걱정했다면서 자신이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한 달 뒤에 면접을 봐도 괜찮겠냐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추측이지만 나를 뽑고 싶어 하는 여성 팀장과 반대하는 윗선 간의 갈등이 있지 않나 싶었다.
한 달이라는 텀을 둔 이유도 다른 면접을 먼저 진행한 뒤에 정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안 나타나면 아쉬운 대로 나를 다시 불러보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기업 입장에서의 통보긴 했지만 일단 알았다고 답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2차 면접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여성 팀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자신은 그날 참석하지 못하니 이사에게 직접 연락해서 일대일 면접을 보면 된다는 안내였다.
2차 면접날이 되었고 나는 다시 그 회사에 방문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 회사의 이사라는 면접관은 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연혁이 오래된 회사라 임직원 연령대도 높은 편이구나 싶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소에 보던 데로 평범하게 2차 면접을 보고 가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날의 면접은 나에게 살면서 겪은 최악의 면접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 면접관이 심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 이력서를 넘겨보던 면접관은 내가 했던 프로젝트나 이력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본 뒤 '직접 보면 좋은데...'하고 중얼거렸다. 그제야 나는 이 면접관이 내가 이력서와 함께 제출한 포트폴리오의 존재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외비 때문에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포트폴리오에는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일부 화면과 상세 설명을 요약해서 정리해 두었다. 조심스럽게 포트폴리오에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했더니 별다른 답은 없었다.
이후에 면접관은 나에게 IT 기획자로 일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일했는지 기간을 묻고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몇 년이 비는데?"
반말은 둘째치고 이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면접관의 생각으로는 대학을 졸업한 후 계속 일했으면 총 경력 기간이 더 길어야 하는데 왜 몇 년이 모자라냐는 의미였다. 이직 중간에 공백기가 있기도 했고 다른 분야의 일에 발을 담근 적이 있기도 했지만 이걸 하나씩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무엇보다 채용공고에서 요구한 직무 연차에는 모자람 없이 오히려 넘치는데 왜 큰 결함이라는 듯한 뉘앙스로 취조하듯 물어보는지 의아했다.
사실 대부분의 IT회사들은 직종과 관련 없는 면접자의 이력에는 보통 관심이 없다. 다른 일을 하다가 국비 지원 교육 등을 통해서 전직을 시도하는 케이스가 많기도 하고 이직이 비교적 활발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냥 쉬고 싶어서 해외여행을 1년 다녀왔다한들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세대 차이 일수 있다고 생각해서 간략하게 추가적인 답변을 했다. 그때부터 대화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면접관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본인이 했던 프로젝트의 예산이 얼마였는지 기억나요?"
"이 프로젝트는 DB 뭐 썼어요? 기억 못 하죠?"
보통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에는 어떤 기술 스택을 쓰는지 알고 있지만 몇 년 전에 했던 프로젝트의 DB까지 기획자가 필수적으로 외우고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내 입장에서는 꼬투리를 잡는 질문처럼 느껴졌다는 뜻이다. 예산 같은 경우에도 사업 담당자와 소통을 하다 보면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기획자의 역량 파악을 해야 하는 면접자리에서 묻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질문에 '정확하지 않지만...'이라고 덧붙이며 흐릿하게 기억나는대로 답했더니 면접관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지금 본인이 왜 모르고 있는지 알아요? 자기 일에 관심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야."
그게 아니라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같은 직무여도 회사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솔직하게 생각하는 바를 말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후로 면접관이 나에게는 아예 아랫사람대하듯이 말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전 회사에서 했던 업무 중 하나에 대해 설명하던 중 면접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뭐 제대로 했다고 볼 수가 없지.”
대답을 하면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잘랐고 당연하다는 듯이 반말도 섞기 시작했다. 설명을 더 이어가려 했지만 이미 다음 질문이 덮어씌워지고 있었다.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이 애초에 없어 보였다. 살짝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면접관은 더 거칠고 퉁명스럽게 말을 뱉기 시작했다.
"이 일 몇 살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사에서 저를 필요로 할 때까지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몇 살까지 하고 싶냐고."
이건 또 무슨 질문일까 싶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슬슬 나도 이 회사에는 입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줄이고 빨리 끝내야겠다 싶었다. 면접관은 나에게 이 회사에서 일하는 기획자들이 짧은 기간에 얼마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있고 또 얼마나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고 있는지 설명했다.
"회사에서 45살 넘은 기획자는 안 써. 젊은 사람들이 훨씬 잘하는데 왜 써? 연차 높다고 돈은 많이 줘야 하는 데 회사 입장에서도 골치야. 젊은 사람들도 부담스러워하고. 그러다 뒷방 늙은이 되는 거야. 뒷방 늙은이.”
약간 혼란스러웠다. 본인들이 나한테 면접 보러오라고 부른 거 아닌가? 저런 말을 왜 하는거지? 머릿 속에서 질문이 맴돌았다. 이건 내가 아는 정상적인 면접이 아니었다. 그래도 중간에 나 자신을 변호하려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가로막혔고 이 언어 폭행에 가까운 막말을 막으려면 상식을 버리고 아버지 뻘에 가까운 면접관과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차마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 눈에는 딱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보여. 능구렁이야."
그럴듯해 보이는 이력서지만 '능구렁이'인 본인 눈에는 내가 굉장히 별로라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고전적인 단어였다. 면접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었지만 이 잘못된 면접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속으로 수없이 고민했다. 그동안 많은 면접을 봤지만 이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는 면접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력이 한쪽에 치우쳤다'
'자기 일만 한 게 보인다'
'이 일 오래 못한다'
내가 속으로 고민만 하는 동안 이 면접관은 쉬지 않고 나를 비난했다. 질의응답은 거의 없었다. 어느새 나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를 견디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면접이 끝나갈 때쯤 1차 면접에서 들었던 연봉보다 더 적은 연봉을 부를 때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이렇게 면접관이 도에 지나친 말과 행동을 하는 동안 왜 중간에 안 나가고 끝까지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었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게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나의 잘못인지 한번 더 돌아보는 ‘을의 관성’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참고, 견디고, 공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감각이 뼈에 새겨져 있었다. 내가 중간에 일어나서 집에 가거나 화를 낸다면 그전에 어떤 맥락이 있든지 간에 예의가 없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이 정도면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나를 조금 더 지켜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왔더니 엄마가 잘 보고 왔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서 '면접관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네' 정도로 일축했다. 엄마가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다시 물었다.
"혹시 네가 좀 안 웃고 있었던 건 아니니?"
엄마는 그저 악의 없이 순수하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아빠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 '면접 볼 때 무조건 밝게 웃어라' 였기 때문이다. 내심 위로를 바라고 있었는데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쉬고 싶다'고 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런 면접은 그 누구도 겪으면 안 되는 면접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면접관의 반말과 연령 차별에 대한 발언을 위주로 상황을 서술했고 이에 대한 기업 차원의 시정 교육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민원은 고용노동부의 관할로 넘어갔다. 일주일 뒤 담당자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관련 법령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드라마였다면 시원한 한 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면접장에서 시대착오적인 갑질을 하는 회사가 존재하고 법은 미비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일 시간이 더 지나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나아질까. 일단 칼바람 부는 지금의 채용 시장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비록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분노 대신 인내를 선택한 성숙함에 따뜻한 위로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구직자가 모든 걸 참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 참는 것 외에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다는 걸 이해한다. 흔히 안 좋은 일을 겪으면 '액땜했다'라고 표현하듯이 여러 회사를 마주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만큼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