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키가 작네요? (번외 편)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by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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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을 쓰다 보니 최근의 면접 경험뿐만 아니라 더 오래 전의 기억들도 함께 떠오른다.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그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면접이라는 자리를 담백하게 '구직자의 채용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자리'로 인식하지 못하는 회사들 말이다. 그래서 이번 회차는 번외 편으로 예전에 봤던 면접 경험담을 써보려 한다. 과거의 면접 에피소드는 앞으로 두어 편 더 쓰게 될 것 같다.


이때의 나는 IT 기획자로 일하기 전이었다. 30대 초반이었고 몇 년 동안 다니던 직장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새벽에 퇴근하기 일쑤라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어느 회사든 상관없으니 적은 돈이나 꾸준히 벌면서 제때 퇴근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정도의 삶이 그 시기의 나에게는 절실했다. 때마침 문서 작성 업무 위주의 사무직 직원을 뽑는 채용 공고를 발견해서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러 갔다.

직원 수는 20명 남짓한 중소기업이었다. 면접은 대표와 일대일로 진행되었다.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고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이었다. 포멀한 옷차림에 헤어스타일이 단정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표는 내 이력서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사진 보고 키가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네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면접 자리에서 키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회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뉴스나 기사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첫인사로 적절하지 못한 실언을 뱉은 사람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듣고 잘못도 없이 멋쩍어했다. 오히려 웃으면서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아, 맞아요. 제가 키가 좀 작긴 해요.”


지금 돌아보면 그 장면이 조금 씁쓸하다. 누구에게나 무조건 밝게 웃고 공손히 행동하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믿고 있던 시기였다. 이상하다 느끼면서도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러려니 하고 별생각 없이 넘어갔으나 첫 단추부터 묘하게 어긋난 면접은 끝까지 불친절하게 진행되었다. 대표는 내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업무에 대해 몇 가지 묻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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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경력이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어요. 이건 후자에 가깝죠.”


그리고 이런저런 말들이 더 이어지긴 했지만 결론은 내가 이력서에 적어낸 희망 연봉에서 한참 깎은 금액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애초에 적어낸 금액도 높지는 않았지만 조율할 의사가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상식적인 범위를 너무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제야 나는 이곳과 인연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며 '그 정도면 왜 서류 단계에서 안 걸렀지?' 하는 의문과 함께 원하는 최저 연봉을 다시 말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표는 알겠다는 듯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그 회사에서는 이후에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과를 떠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면접이었다. 이런 면접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은 그때도 피곤했다. 필터링도 제대로 안 할 거면 이력서에 희망 연봉은 왜 적게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회사 기준과 맞지 않았다면 서류 단계에서 거르면 되었을 텐데. 굳이 면접 자리에 불러놓고 키 얘기를 하거나 경력을 깎아내리며 굳이 공격적인 말을 하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을 떠올리다 보면 이전 회차에서 했던 면접비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만약 면접비 지급이 필수였다면 이런 면접이 과연 이렇게 쉽게 이루어졌을까. 적어도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태도에는 제동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기억이 나의 개인적인 '똥 밟은 경험'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행태는 어느 무례한 대표의 성격 문제라기보다 면접이라는 자리에서 구직자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상관없는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특정 회사가 아니라 바뀌지 않는 구직 시장의 관성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속아 당연하지 않은 것을 계속 당연하게 여기는 한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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