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통보 24시간 만에 취소된 이유
구직 활동을 하며 가장 달콤한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최종 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일 것이다. 긴장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 한순간에 부드럽게 풀리고 머릿속에는 출근 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소소한 계획들로 차오른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채 하루도 가지 못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합격과 취소를 정확히 24시간 간격으로 겪어본 적이 있다. 이번 회차 역시 기획자로 자리 잡기 전, 오래전에 겪었던 기묘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나는 직원 수 10명 남짓의 소기업에 지원했다. 40대 초반의 여성 대표가 직접 면접을 진행했는데,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가 해온 업무 경험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역할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대표는 면접 내내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업무 경험이 부족해 시행착오를 겪고 있던 신입 사원 두 명을 이끌어줄 ‘팀장급 역할’이 절실하다며, 나에게 꽤 분명한 요구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면접은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 확정 의사를 전달받은 데다 연봉 협상까지 큰 이견 없이 끝났다. 출근일은 다음 주. 대표와 이미 한 식구가 된 것처럼 인사를 나누고 회사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하철에서 이미 회사 근처 맛집을 검색하고 있었고 출근 전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이런저런 계획을 상상하며 짧은 휴식기의 여정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전, 메일함에 도착한 한 통의 메시지가 그 모든 계획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정중하고 공손한 문체로 작성된 메일의 요지는 ‘채용 취소’였다. 이유는 의외였다. 내부 직원들이 “우리끼리 조금 더 해보겠다”는 의견을 모았고 그에 따라 팀장 포지션 채용을 백지화하기로 했다는 설명이었다.
메일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부에서 이런 논의를 미리 하지도 않고 채용 공고를 냈다고?’였다. 직원을 새로 뽑는 일은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영진의 책임이다. 이미 최종 합격 통보까지 한 뒤에 내부 여론을 이유로 결정을 뒤집는다는 것은 그 조직이 얼마나 즉흥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인지 드러내는 셈이었다. 그리고 메일 말미에는 새로운 제안이 덧붙어 있었다. 정규직 채용은 어렵지만 외주로 맡길 업무들이 있으니 프리랜서 형태로 함께 일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 제안을 보는 순간 기분이 더욱 좋지 않았다. 이 회사가 나를 어떤 위치에 두고 싶어 하는지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규직으로서 감당해야 할 비용과 책임은 부담스럽지만 당장의 업무 공백은 메우고 싶다는 속내. 채용을 번복한 직후 곧바로 프리랜서를 제안하는 방식은 이 결정이 얼마나 즉흥적이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조건이 맞다면 프리랜서로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신뢰가 무너진 회사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채용 취소 건에 대해 확인했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마지막으로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구직자에게 이런 방식의 번복은 다시는 없었으면 합니다.”
잠시 후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분명 미안함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사과를 전하며 예상치 못한 제안을 꺼냈다. 내부적인 실수로 큰 실례를 범했으니 보상의 의미로 한 달 치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채용 확정 후 별도의 사전 통보 없이 취소될 경우 해고예고수당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과정이 부담스러워서 울며 겨자 먹기로 행정 절차를 밟을 생각을 하니 막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먼저 그 책임을 인지하고 수습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날이 서 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긴 했다. 돈 때문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했다는 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출근 한 번 하지 않은 회사로부터 한 달 치 급여를 송금받으며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보상 지급 절차에서 별다른 갈등 없이 끝난 점은 다행이었지만 씁쓸한 뒷맛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법적 권리를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었거나 대표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일은 더욱 좋지 못한 방향으로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기업에게 채용은 수많은 경영 판단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구직자에게는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중대한 사건이다. 공고를 내고 사람을 부를 때는 그 선택이 한 사람의 시간과 계획을 얼마나 크게 움직이는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사과와 보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의 기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합격이라는 말은 번복되어서는 안 되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진 단어다. 부디 모든 회사가 채용 공고를 올릴 때 그 말의 무게를 먼저 가늠해 보길 바란다. 나는 한 달 치 급여라는 최소한의 예의를 챙겨 다시 구직 시장으로 돌아왔지만 이런 정중한 번복조차 필요 없는 상식적인 채용 환경을 더욱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