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비 지급에 대한 달라진 생각

면접이라는 무료 서비스의 부작용

by 지원


구직 활동을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지출이 발생한다.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 같은 자기 계발 비용은 필연적으로 쓰게 되고 이력서 사진이나 면접용 옷도 준비하고, 교통비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이 안될 정도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다행히 같은 서울 내에서 움직이는 수준이지만 주거 지역에 따라 이동 범위가 넓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면접장을 향해 구직자들은 아예 기차를 타고 지역 이동을 하기도 한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인근 카페를 찾아 커피라도 한 잔 하게 된다면 구직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고백하면 나는 오랫동안 이런 비용을 구직자가 감당해야 하는 투자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아깝단 생각이 들어도 비용은 내가 부담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취업이 간절하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사회초년생 때 바라본 세상이 그랬고 나도 그 안에 정신없이 물들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무직자가 되고 면접을 여러 번 보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주 극단적인 사건 하나가 결정적이었다기보다 반복되는 비효율과 준비되지 않은 면접들을 마주하다 보니 이를 제재하는 외부 장치가 하나쯤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 심리라는 게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에서 자율적으로 품격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례로 어떤 회사의 면접 같은 경우, 1차 면접에서 했던 이야기를 2차 면접에서 거의 그대로 다시 답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조율이 된 줄 알았던 부분을 다시 협의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내부에서 공유되었어야 하는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채 같은 면접을 한번 더 본 느낌이었다. 회사도 지원자도 새롭게 확인하는 게 없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연재글 1화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질문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지원자를 불러놓고 즉흥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력서를 미리 보지 않은 듯한 질문을 계속 받다 보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회사는 처음부터 나를 채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대기업이었던 이전 직장 이력에 호기심을 보이면서 '궁금해서 불렀다'는 식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건 이런 경험이 나만의 예외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 먼 거리를 왔지만 '충고나 해주려고 불렀다' 식의 불필요한 질책만 듣고 왔다는 이야기, 여러 단계로 쪼개진 채용 절차로 인해 같은 회사를 여러 번 오갔지만 결국 최종 합격에서 떨어지고 그 과정에서의 모든 지출은 매몰 비용으로 남았다는 이야기 등은 커뮤니티나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음 무거운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면접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용이 발생한다는 인식만으로도 기업은 최소한의 면접으로 인재를 가려낼 수 있도록 채용 과정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할 테니까. 경제활동 인구의 구직 의사를 장려하고 기업의 인사 수준을 높이는 장치인 셈이다.

때마침 작년 하반기에 면접비 의무 지급에 대한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갈 길은 멀겠지만 이런 논의가 공론의 장에 올라왔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언젠가 면접비 지급 제도가 정착되어 구직자들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든 회사가 면접비를 지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몰아서 여러 단계의 면접을 진행하거나 꼭 필요한 경우에만 대면 면접을 진행하는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건 지원자의 시간을 아무런 손해 없이 소모해도 되는 자원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일은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면접도 예외는 아 것이다.


면접은 회사가 지원자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사가 스스로의 기준과 태도를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면접비 지급은 구직자를 위한 제도이기 이전에 기업의 인사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하고 신중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기준이 될 것이다. 구직자는 면접장에 갈 때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나에게 기회를 준 회사에 대한 예의다. 기업도 스스로 자문이 필요하다. 기업과 한 배를 타는 선원이 되고자 단단한 선박의 문을 두드리러 온 방문객의 시간과 비용에 대해 어떤 태도로 응하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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