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의 식사준비
일을 시작하고 첫 번째 방학이 되었다. 시작 전부터 남편과 계속 얘기하고 시물레이션도 해보았지만 역시 실전은 다르다. 험난했던 지난 일주일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재택근무
계속해서 재택근무를 해오던 남편 회사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는 편이고 내가 새롭게 시작한 회사도 나름 유연적인 분위기였다. 달라진 영국 내 분위기로 오롯이 재택만 하는 옵션은 많이 사라졌고 출근 3일 재택근무 2일이 일반적인 형태였으나 다행히도 나의 경우 출근 2일로 계약할 수 있었고 남편도 회사에서 2일 이상으로 배려해 주어서 우리는 이틀씩 출근 금요일 하루는 함께 집에서 근무하는 식으로 세팅하게 되었다.
1. 소음과의 전쟁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 거겠지만 전화 회의를 할 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주의도 주었건만 둘이 놀다가 다투거나 또는 너무 신이 나서 큰 소리가 나는 경우가 꽤나 많다.
아이들이 다투면 중재할 어른을 찾고 그 과정에서 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거나 또 그 흥분을 가라앉혀야 하므로 대화에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화 회의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난감해져서 나랑 남편은 동시에 미팅을 하기보다는 시간차를 두고 하는 구도로 맞춰갔다.
2. 삼시세끼 그리고 간식
혼자 재택을 하는 날이면 나도 남편도 간단히 점심을 때우곤 한다. 도쿄에서 거주할 땐 거의 항상 함께 재택을 하다 보니 편의점이나 집 앞 식당가에서 도시락을 포장해오기도 했지만 런던도 아닌 영국의 소도시에서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대충 먹일 수도 없어서 밀프렙을 점심 저녁으로 두배로 준비해 두거나 중간중간 요리를 해야 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먹는 속도도 느리고 먹여주거나 챙겨주어야 하는 경우엔 식사를 먹는 시간에만 2-3배의 시간이 소요되고 점심 식사 후에 치워두지 않으면 저녁 식사 준비에 차질이 생기므로 이래저래 점심시간으로 꼬박 1시간은 소요되는 것 같다.
집안일
1. 청소
내가 일을 시작하고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확실히 청소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사람이 집에 없으면 먼지가 덜 생긴다는 게 그런 건가 보다 라는 걸 크게 깨닫고 있다.
청소는 주말에 몰아서 한번 한다 쳐도 아이들이 집에 계속 있다 보니 어지르고 또 먼지와 간식 먹은 흔적들로 집이 더러워지는 건 다반사였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치우곤 했었지만 이번 하프텀때는 그럴 기력마저 남아나질 않았다
2. 장보기
장보기도 챌린지 중 하나였다. 설상가상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더 많은 장보기가 요구되었다. 게다가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첫째와 나가고 싶어 하는 둘째이기에 성향이 너무 다른 아이들이었다.
첫째는 혼자 둬도 잘 놀기 때문에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함께 있어도 아무 무리가 없어서 내가 둘째를 데리고 나가 주는 장소로 마트를 제안하고 함께 쇼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마저도 나도 근무 시간이 있다 보니 급하게 다녀와야 해서 막내의 외출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방학활동
1. 플레이데이트
아쉽게도 이번엔 이야기가 나온 친구도 없었지만 나 역시 그런 걸 챙길 여력이 없었다. 둘째의 어린이집에서 다 같이 만나자는 약속은 있었지만 그건 내가 불참의사를 밝혀야 했다.
예전의 하프텀 방학땐 용감하게 아이들 둘을 데리고 런던의 박물관을 다녀오기도 하고 하다못해 우리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 행사라도 참여했으나 이번엔 그런 것도 생각할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도 학기 중에 길어진 바깥 활동에 조금씩 지쳐있어서 따뜻한 집에서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 많이 해먹이며 쉴 수 있도록 해준 거라 위안 삼았다.
2. 병원 투어
아이들이 집 근처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니다 보니 하교 시간이 늦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평일에 스케줄을 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방학 때로 치과 검진 시력 검진등을 다 몰아놓았던 터라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큰 과제였다.
남편의 도움도 받고 또 내가 근무 시간 중 팀에 양해를 구하고 다녀오기도 하고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해결할 수 있던 것들이 모두 큰일이 되어버렸다.
큰 아이의 시력 검사 후 안경을 맞춰야 했는데 남편을 믿지 못해서 내가 확인하고 구입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아이들 둘을 데리고 다녀오려니 마음은 급하고 아이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완전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하프텀이 지나고 주말이 되자 9박 10일간 총 23번의 식사 준비를 한 나는 앓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