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나이가 어릴 땐 윗사람 말만 잘 들으면 될 줄 알았다.
사회생활도 눈칫밥으로 시작했기에 눈치 잘 보고 헤헤 웃으며 착한 사람으로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일 잘해도 호구 착하기만 해도 호구,
그냥 나는 호구였다.
H사와 인연을 맺은 건 대학교 2학년 휴학기간에 시작하게 된 알바였다.
전시회장에서 손에 꼽히게 큰 부스였는데
(남학생들이 장난식으로 건 농담에도 얼굴이 빨개졌던 창피한 기억은 덤)-
무거운 짐도 상관 않고 땀 흘리며 열심히 일했던 것이 관계자 눈에 띄었는지 연락이 별도로 오기 시작했고, 결국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인턴생활은 6개월 계약직이었지만 휴학기간 말미에 얻은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고 바로 응했었다.
실제로 그때 인연으로 졸업 후 3개월 동안 취업준비와 해외연수 등의 고민으로
잠 못 이루던 밤들을 일깨운 건 본부장님의 연락이었다. (연애에 정신 팔렸던 시기;)
갈팡질팡했었으나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입사하게 되었다.
그때 익숙한 분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의욕적으로 사회초년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부서 동기들의 스펙이 아주 짱짱했기 때문에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하는 것이 보였을까, 나의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원급 초년생에게 단독 업무를 맡기는 것도 그렇고
클라이언트와의 직접적인 컨택이 주인 업무를 맡긴 것도 쉽게 볼 수 없는 케이스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도 면역도 없었으며 타격을 오면 오는 대로 내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광고주, 같이 업무 하는 디자이너 등 인간관계에서 얻게 된 많은 스트레스는 나에게
탈모와 위장장애 등의 각종 질병을 주었다.
나는 점점 추락하는 자존감과 내외적으로 딸리는 체력으로 도망치듯이 해외 유학을 선택했다.
정직원 입사 2년을 꽉 채운, 진급을 앞두고 말이다.
방황은 길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시간 8개월,
모종의 사건으로 침몰하게 된 시간 3년
시간은 잘만 흘렀고 또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낸 건 H사 인연이었다.
그래도 경력이 단절된 시간이 좀 있어서인지 2-3개월에 걸쳐서 면접은 3차례나 진행되었다.
역시나 연봉도 많이 깎이고 내가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의욕은 가득이었다.
하지만 회사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족한 부분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대상이 있어서인지
틈만 나면 비교가 되었고 나를 보여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교대상이 퇴사하고 나에게 기회는 왔다.
새로 온 사수는 나보다 어렸지만 경력은 높았다.
프로페셔널해 보였고 깐깐해 보였다.
이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이어졌다.
나를 질투하고 있었던 거다.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느꼈었나 보다.
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거다.
하지만 그와 나는 다른 직급이었고 연봉도 많이 차이가 났다.
그런데 그는 나와 일을 동등하게 나누려고 했다.
일정에 따라 클라이언트도 동등하게 나누고 서로 일을 떠넘기려고 했다.
나는 억울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공의 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자기보다 낮은 직급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면 될 터인데
그냥 화내고 까내리기 바빴다.
남 앞에서 남 욕 하기를 밥먹듯이 일삼는 사람이었다.
그의 만행은 커져만 갔고 그의 폭주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기준으로 2년 차가 되면 어느 정도 일도 익숙해졌겠다,
생각이 많아질 때다.
코로나로 급여도 삭감되고 연봉도 동결되었으며
급여는 낮아졌으나 야근을 밥먹듯이 할 정도로 하는 일은 너무 많았다.
일을 잘 해내도 보상은 없었으며,
나를 시기 질투하는 대상도 달래줘야 했고
나를 까내리기 바쁜 사람과도 웃으면서 밥 먹어야 했다.
순간순간 나타나는 미친놈도 상대해야 했다.
그 시점에 단기 계약직으로 제의가 오게 되었다.
급여는 더 많은데 일은 편하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퇴사 결정은 빨랐으나 개인적인 연으로(쌓인 정 때문에..) 퇴사 얘기를 꺼내기가 막막할 뿐이었다.
말 꺼내는 데까지도 너무 힘들었다.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애틋한 인연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저 내 생각뿐이었던 거다)
본부장님은 내 퇴사 결정에 회유도 하시고 설득도 하시다
종반에는 한 달 전에 퇴사를 얘기해야 한다며 관련 사항을 언급하셨다.(갑자기?)
하, 마지막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왜 퇴사를 말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건가에 대해 현타가 왔다.
그저 본부장님께 죄송해서 마음이 편치 않아서 미루다 미뤘던 건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퇴사와 동시에 인연의 끝을 본 것 같았다.
외부에서 마지막 회유가 있는 자리였다.
본부장님은 날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다시 떠나는 내가 그냥 방황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테다.
개인적으로도 경력을 또 쌓다가 놓아버리는 형태였고
또 과장 진급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민 고민하다 쌓이고 쌓인 얘기를 하나 둘 꺼내놓았다.
나는 떠날 사람이니까, 이건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떠나는 사람으로서 문제가 거론됨에 따라 해결점이 나타날 줄 알았다.
급여문제,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다고 하셨다.
공공의 적, 정말 모르고 있었던 문제였고 충격받으신 것 같았다.
그런 일들이 내부에서 쉬쉬 되고 있었다니?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충격받은 만큼 초점은 거기에 맞춰졌고
이 일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훗날 나는 그 사람 때문에 퇴사한 것으로 소문이 떠돌았다.
진상조사가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해결책이 보인다 싶었다.
내가 시발점을 터뜨린 것과 같은 상황에서 퇴사하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결론지어지기 전에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일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냥 묻혀버렸다.
남겨진 사람들은 찝찝함만 달고 그 상태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나간 사람에 대해 무어라 말이 떠도는지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분란만 일으킨 사람으로 남았을 테니..
난 이제 더 이상 그들과 연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불편함이 늘어간다.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밝혀졌음에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뭐가 문제일까?
인간생활은 가면을 두껍게 쓰고 그냥 참고 버티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서로가 이해하려는 노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생활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본인이 쌓아온 것들이 있겠지만
각각의 다른 성질들은 서로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
대화가 단절된 사회생활은 보이지 않은 암흑과도 같다.
그저 나는 끝까지 물어지지 않는 이상(물어져도 잘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내 뒤에 큰 백이 있지 않는 이상 그냥 물어 뜯길 수밖에 소동물일 뿐인 거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세 가지 전제가 있다고 한다.
하나, 이 사람은 내 마음을 모른다
둘, 나는 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셋,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먼저 떠날 수 있다
여전히 사회생활은 어렵다.
나이가 적든 많든, 직급이 높든 낮든, 연차가 쌓이고 쌓여도
어떤 상황에 쳐해 있건, 사회생활은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난제인 것이다.
사회 속에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