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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심해어 Nov 21. 2023

심사위원 코스프레

누군가를 평가할 자격이 있나요?


사람들은 숱하게 누군가를 평가한다.

자신에 대한 잣대는 한없이 낮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잣대는 한없이 높기만 하다.

평가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내 장점을 드러내기 위해, 내 단점을 숨기기 위해 남을 평가한다.


자신의 잣대를 기준 삼아 남을 평가해서는 안되지만

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쉽지 않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올걸 알면서도 내가 우위를 점하고자, 분위기를 이끌고자, 이기적인 마음에

남을 평가절하하고 깔고 올라가려 한다.

생존본능인 걸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상황은 불가피하게 다가온다.

조금 더 쌓인 경험치 때문에 조금 더 쌓인 인간관계 경험치 때문에.

나 역시 마냥 현명한 솔로몬일 수고 없고, 냉철한 소신 발언자일 수도 없으며 고독한 독고다이일 수만은 없을 노릇이다.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 누굴 평가할 자격조차 되지 않으면서

그렇게 나는 반강제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내 아래에 두고 간다.

그 순간에 내가 싫으면서도 또 ‘착한 코스프레’를 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또 남에게 평가받지 않기 위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쓴다.


실제로 나 자신에 대한 평가들이 내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게 나쁜 평가든, 좋은 평가든 신경은 쓰이고 스트레스는 받을 수밖에 없다.


평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남들의 평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될 뿐이다.


예를 들자면 내 귀에 맴돌았던 평가는 아래와 같다.

‘M은 얘기를 잘 들어줘서 좋아’

‘M은 역시 뭐든 잘하니까 다 하지’

‘M은 이걸 잘하니까 이걸해야해’

‘성급해’, ‘다혈질이야’, ‘너라면’


나를 알아서 하는 소리인지, 나를 몰라서 하는 소리인지

모든 것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평가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었다.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움직였다.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


내가 계획적이라고 해서 죽을 때까지 계획적으로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도 있고 변덕도 부릴 수 있다.

계획적인 측면이 강한 내가 즉흥적으로 살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당장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누가 누굴 알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해서 맺은 인간들과 사회생활은 잘 굴러갈까?

좋게 좋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 수는 없는 걸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이란 동물은 머리를 참 못써서 안달인 것 같다.

정말 머리 아픈 일이다.

치열하게 눈치 보고 평가하고 신경 써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나가기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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