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5분의 닫힌 문, 그리고 새벽의 국도

by 오영석

이번 서울 나들이는 시작부터 묘하게 타이밍이 어긋났다. 서촌에서 이정희 선생님 전시를 보고 시간이 떠서 경복궁이나 한 바퀴 돌까 싶어 걸음을 옮겼는데, 도착하니 4시 5분이었다. 매표소 직원은 입장이 4시까지라며 단호하게 앞을 막았다. 설마 이 시간에 문이 닫힐 줄이야.

허탕을 쳤다는 생각에 김이 샜지만, 돌아서려다 본 한젓한 흥례문이 의외로 좋았다. 사람들로 북적였으면 보지 못했을 고요한 정면이었다. 나는 그 닫힌 문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월요일에 펜을 들어 그 풍경을 그렸다. 못 들어간 덕분에 남길 수 있는 그림이었다.


저녁에는 작가님들과 남양주 선생님들과 함께 근처 LP 바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영어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뉴욕타임스 직원들의 회식 자리였는데, 사장님이 우리를 그 일행으로 착각해 받아준 것이었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공간. 서울 한복판인데도 어디 멀리 여행을 온 듯한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 왁자지껄한 소음이 재미있어서 나는 또 펜을 꺼내 그 장면을 그렸다.


진짜 예기치 못한 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터졌다. 전주행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 휴게소에 들렀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니 버스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10분 정차라고 해서 시간 맞춰 나왔는데 차가 없다니. 날은 춥고 폰 배터리는 떨어져가고, 가방은 그대로 버스에 있는 상황. 황당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아, 나를 두고 간 기사가 승용차를 끌고 데리러 왔다.


익산 휴게서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잔뜩 벼르고 있었다. 시간을 얼마나 허비했는지 따져 물을 참이었다. 그런데 차에 타자마자 그가 바로 사과를 하며 말을 꺼냈다. 저번 달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승객 체크하는 걸 깜빡했다고. 그 말을 듣는데 솟구치던 화가 쑥 들어갔다. 상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나라도 그러지 않을까..


익산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국도 위, 버스 기사로는 드문 30대 중반의 젊은 기사의 차 조수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친구가 자라온 환경이 내가 겪어온 시절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보통 버스 기사님들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은데, 나보다 어린 친구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게 뭔가 대단하기도 하고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다. 도착할 때쯤엔 화는 다 풀리고, 하마터면 "나중에 술이나 한잔합시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5분이 늦어 못 들어간 경복궁, 우연히 들어간 LP 바, 그리고 버스를 놓쳐 타게 된 낯선 이의 승용차.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 하루였지만, 덕분에 책상 위에는 예상치 못한 그림과 이야기들이 남았다. 어긋난 타이밍이 만들어준, 신기하게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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