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굳이 차를 가져가는 일이 유난히 귀찮았던 날이 있었다. 웬일인지 그냥 걷고 싶어 차를 두고 터덜터덜 걸어 나왔던 우리동네, 전주 중노송동의 골목길. 평소라면 쌩하니 지나쳤을 그 길이, 걷는 속도에 맞춰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마침 오후 5시 30분, 해가 지기 직전의 '골든 아워'였다. 세상 모든 것에 따뜻한 노란색 필터를 씌워주는 마법 같은 시간. 그 빛 아래선 복잡하게 엉킨 전봇대의 전깃줄도, 골목 한쪽을 무심하게 차지한 투박한 냉동 탑차도, 낡은 벽돌 건물도 모두 근사한 그림이 되었다. 그 순간의 공기가 너무 좋아,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두었다.
며칠 뒤, 작업실 책상에 앉아 그날 찍은 사진을 다시 꺼냈다. 화면 속 풍경을 종이 위로 옮기며, 그때 보았던 그 빛을 다시 그려본다. 새 펜의 잉크가 종이에 스미는 느낌이 좋다.
굳이 사진 속 건물의 창문 개수를 세어 그리지 않았다. 트럭의 바퀴 모양을 똑같이 재현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얽히고설킨 전선은 손 가는 대로 쓱쓱 긋고, 그림자는 뭉툭하게 채웠다. 완벽하게 똑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그날 오후, 나를 멈춰 세웠던 그 따뜻하고 노오란 빛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완성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2026년의 어느 날, 귀찮음이 선물해 준 헐거운 시간 속 풍경이 종이 위에 머물러 있다. 가끔은 이렇게 조금 느리게, 완벽하지 않게 채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