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행은 지난 수원 여행에서 합류했던 세라 작가님의 제안이었다. 이정희 작가님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에서 어반스케치 전시와 김욱성 작가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일요일, 우리는 두 개의 전시를 모두 둘러본 뒤 마지막 일정으로 감천문화마을을 찾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내 말에 세라 작가님은 꼭 가봐야 한다며 앞장섰다. 통영의 동피랑 정도를 생각했던 나는 입구에서부터 예상을 수정해야 했다. 비탈은 가파르고, 골목은 끝없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그곳은 거대한 관광지였다.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운 외국인들의 낯선 언어와 일요일의 인파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그 소란 속을 걸었고, 나는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책상 앞에 앉아 그때 찍은 사진을 다시 꺼냈다. 현장에서 추위에 떨며 그렸던 그림과는 다른, 정돈된 종이 위로 펜을 올렸다. 사각거리는 펜촉이 비탈진 마을의 윤곽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2점 투시니 1점 투시니 하는 이론적인 계산보다, 눈에 보이는 지붕의 기울기를 따라 투박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골목을 걷는 사람을 한 명 그려 넣었는데, 주변 집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진 것이다. 작은 동화 마을에 불시착한 거인처럼 비율이 어긋났다. "망했네." 작게 읊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미 그어진 펜 선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같다. 나는 그 위에 붓을 들어 짙은 노란색 물감을 칠했다. '옐로우 딥'과 '옐로우 오커'가 섞인 색이 종이 위로 번졌다.
그림이 평면에서 입체로 솟아오른 건, 마지막에 그림자를 넣는 순간이었다. 울트라마린과 반다이크 브라운을 섞어 만든 어두운 회색빛. 붓이 노란 벽의 측면과 지붕 아래를 지나갈 때마다 납작했던 집들이 형태를 갖췄다. 어색하게 서 있던 '거인'의 발밑에도 짙은 그림자를 깔아주었다. 어둠이 닿자 그는 비로소 땅을 발을 붙이고 섰다.
흔히 사람들은 그림자를 인생의 고난이나 역경 같은 어두운 것으로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으면 우리는 빛을 인지할 수 없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선명하고 깊게 지는 법이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말이 아니라, 빛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붓을 내려놓고 물기가 마르지 않은 종이를 바라본다. 실수로 그려진 큼지막한 사람도, 삐뚤어진 지붕 선도, 짙게 깔린 어둠 덕분에 하나의 풍경으로 묶여 있다.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좋은 줄 안다는 말처럼, 그림자가 있어 비로소 노란 벽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