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출발, 그 위로 쏟아지던 오후 5시의 금빛

by 오영석

유난히 긴장된 하루였다. 사촌 동생의 결혼식, 생전 처음으로 사회자석에 섰다.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고, 첫 사회였는데 나름 이쪽에도 재능이 있어보였다. 예식이 끝나자마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고창으로 차를 몰았다. 동생의 새로운 출발을 등 뒤로 하고, 또 다른 시작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었다.


도착한 곳은 '곰아재' 형님의 새 드로잉 스튜디오였다. 형님은 어반스케쳐스 광주의 창립자이자, 2020년 호주에서 돌아온 나를 밖으로 끌어내 풍경 앞에 앉히고, 현장에서 그리는 맛을 알려준 형님. 이미 한바탕 축하를 마치고 떠나는 광주 선생님들과 바통 터치를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형님의 첫 작업실을 둘러보는데 묘하게 내 일처럼 뿌듯했다. 빈손으로 시작해 이 공간을 채우기까지의 시간들이 짐작되어서였을까.


담소를 나누다 보니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전주로 돌아오는 길, 긴장이 풀려서인지 국도 위를 달리는 기분이 차분했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차창 밖 풍경이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해가 산 능선에 걸리면서 들판 전체가 짙은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그 빛이 너무 깊었다. 나는 주저 없이 속도를 줄이고 유턴을 했다. 가던 길을 되돌아가 차를 세우고,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서서 그 장면을 눈에 담았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멈춰서 봐야만 하는 풍경이 있다. 문득 오늘 마주한 두 번의 출발이 떠올랐다. 이제 막 식장을 걸어 나온 동생과, 자신의 공간을 처음 연 형님. 이 넓은 들판에 가득 찬 황금빛이 그들의 앞날에도 비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월요일 저녁 7시, 책상 앞에 앉아 그날의 온도를 다시 꺼냈다. 하얀 종이 위에 마스킹 액으로 동그란 해를 덮어두고 물을 발랐다. 레몬 빛에서 시작해 짙은 노랑, 그리고 주황으로 이어지는 물감이 종이의 결을 타고 번져나갔다. 결혼식장의 화려한 조명과는 다른, 차분하고 묵직한 자연의 색이다.


붓은 첩첩이 겹쳐진 산의 능선을 따라 움직였다. 멀리 있는 산은 흐릿하게, 가까운 산은 선명한 어둠으로. 그 아래 펼쳐진 넓은 논과 밭, 드문드문 놓인 비닐하우스도 무심한 선으로 툭툭 그려 넣었다. 기교를 부리기보다 그날 들판을 채우던 따뜻한 볕을 그대로 옮기고 싶었다.


마스킹 액을 떼어내자 하얀 태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핸들을 꺾게 만들었던 그 짧은 멈춤이 종이 위에 내려앉아 있다. 붓 끝에서 번지는 금빛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부디 이 빛이 그 둘의 길 위에도 오래 머물기를.



작가의 이전글노란 벽에 짙은 그늘이 닿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