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일째, 소사이어티 제도
아침이다. 눈을 뜨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열대의 사이클에 맞추어진 몸은 해가 뜬 다음에는 침대에 누워있기를 어려워한다. 일어나 기지개를 켠 곳은 선실 안. 두 팔을 쭉 뻗기 위해서는 천장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어야 한다. 창 바깥으론 가까운 섬의 갖은 초록이 막 어스름을 벗고 밝아오기 시작한다. 야자수, 바나나처럼 기다란 잎 식물, 키가 삼십 미터는 족히 될 법한 키다리 나무, 물가에 드리운 버드나무처럼 이파리가 축축 처진 침엽수... 눈길이 닿는 곳마다 빼곡하게 생명들이 뒤엉켜 있다. 삐죽빼죽한 계곡의 능선을 따라 노니는 흰 새들의 날갯짓을 잠시 바라본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강렬한 빛으로 밝아오면, 새삼스레 감사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이 시각에만 누릴 수 있는 선선한 바람이 그리워질 것이다. 폴리네시아의 따이띠 본섬을 떠난 지 열흘, 한국을 떠난 지 반년이 되어간다.
배에서 살아가는 일은 사소한 것부터 종합적인 상황 판단을 필요로 한다. 땅 위에서처럼 어느 때고 쉽게 물이나 전기를 펑펑 쓸 수 있지 않다. 이를테면 아침 소변을 보러 가는 일부터도 그렇다. 배가 이동 중인지 정박 중인지, 포구나 다른 배가 많은 곳에 정박 중인지 아닌지, 바깥 날씨가 어떤지, 바다의 물살이 어떤지, 그리고 다른 선원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정박과 항해를 반복하는 열흘 동안 선내 화장실을 쓴 일은 야간 항해 도중 단 한번뿐이었다. 나머지는 보통 배 뒤에 달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물속에서 해결하곤 한다.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물질들이 바다 환경에 이질적인 갈등을 일으키곤 하지만, 몸에서 즉각 만들어낸 유기물은 비교적 부담이 적다고 할 수 있겠다. 생활에 필요한 물질들이 내 몸 주위를 드나드는 추이를 배에서는 훨씬 더 면밀하게 관찰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어제 이곳에서 하루 이틀이면 닿을 보라-보라 섬에 있는 정박지에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민물 탱크의 물로 빨래를 할 수 있는 날이 된다.
아침 소변을 보고, 선두로 가 배에서 유일하게 요가를 할 만큼 평평한 자리를 찾아 몸을 푼다. 배에서 찾아낸 유일한 요가 장소는 바로 쇠로 된 닻을 내리기 위한 쇠사슬 고정대다. 천천히 호흡을 헤아려가며 수리야 나마스까라를 짚어나가는 팔과 다리 근육 아래에 내 모든 일상의 필요를 떠내려가지 않도록 움켜쥐어주는 사슬이 지나간다. 데크 위에 요철이 있어 매트는 따로 필요치 않다. 요가 매트를 가지고 유랑을 다니는 것도 딱히 아니지만. 70리터에 달하는 거대한 배낭의 절반을 채운 건 모두 다이빙, 무호흡 잠수 장비였다. 수영복, 네오프렌 웻슈트(잠수복), 마스크와 스노클, 1미터는 족히 넘기는 긴 길이의 카본 오리발, 그 외에도 잠수에 필요한 이것저것에 더해 그것들이 고장 나거나 물속에서 잃어버릴 것을 대비한 여분의 장비들. 다이빙을 시작하기 전에만 해도 20리터 배낭 하나로 육 개월은 거뜬히 여행을 다니곤 했다. 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 축에 속하는 여행자였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다이빙 장비 빼고는 가방 속 필수품은 여권과 칫솔뿐이다. 내 가방엔 수건도 샴푸도 비누도 로션도 없다.
내 몸집보다 큰 배낭을 낑낑거리며 어깨와 골반에 얹고, 무릎 보호대를 단단히 두르며 집을 나설 때는 막 대설 특보가 내리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바다가 뜨겁게 데워져서 큰 눈이 내리는 거라고들 했다. 가방에 들어가지 않고, 버리거나 팔지도 못한 나머지 짐은 1세제곱미터짜리 보관 창고로 옮겼다. 우리는 1년 뒤에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보게 될까? 한국에, 아니 이 지구 위 어디에도 '집'이라 부를 장소를 남겨두지 않기로 한 결정은 삼십몇 년 만에 처음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너무나 두려워서 오히려 아무에게도 떠남을 알릴 수 없었다. 나의 여정을 아는 유일한 다른 사람은 첫 2주 동안 묵을 숙소 주인인 갈린 뿐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눈이 쏟아졌고, 줄줄이 비행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대나무로 만든 벽에 야자나무 잎 지붕을 얹은 집에 살고 있는 갈린에게 눈이 와서 비행기가 지연된다고, 오늘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문자를 보내며 마음 졸였다. 갈린은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 내게 혼자 여행하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으며 다정하게 다독여줬다. 그로부터 오 개월 후, 필리핀을 떠나기 전날 저녁 엉엉 울며 술잔을 기울이는 나를 재워주고, 먹여주고, 항구까지 바래다준 것도 그녀였다.
혼자서 떠난 여정들은 참 이상하다. 벼랑 끝까지 내몰리면, 거기서 꼭 필요한 든든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어떤 필요들을 손사래 치며 호기롭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세상은 그런 내 코를 납작하게 뭉개준다. '혼자 하는 방랑'이란 줄곧 산산이 깨어지는 환상일 뿐이다. 눈보라를 헤치고 떠난 미지의 모험도 내내 연결과 만남의 연속이었고, 그 만남의 찬란함이 나를 떠나가는 것이 아쉬워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정해진 일정이 없는 여정이더라도 하루는 계속된다. 정해진 일정이란 결국 과거의 내가 원했던 무엇일 뿐이다. 아침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대화를 시작하는 곳이다. 오늘은 천천히 호흡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요가 후에는 찻물을 올리고 방 안의 이불과 베개를 꺼내 말린다. 지구 어디에 있든, 아침에 하면 좋은 것들에는 딱히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차이가 있다면 다 마신 찻주전자를 그 안에 든 찻잎과 함께 선미의 바닷물에 푹 담근다는 것. 검붉은 찻잎이 진녹색 물속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멀리서 볼 때 어려워 보이는 어떤 것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참 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