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곳에서도 포근하라고, 바다가.

26일째, 보홀의 크리스마스

by 파나오

 해 지는 거 보러 가지 않을래? 젠이 물었다.

문득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해변을 거닌 게 언제였는지 되짚었다.


온통 아름다운 모래 해변으로 둘러싸인 섬에 살면서도 나날이 해 질 녘의 낭만을 챙길 새가 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애써 챙기지 않으면 해가 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바다가 가진 아름다움과 여유가 좋아서 시작하게 된 프리다이빙이건만,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던 기분이 들었다. 결국 망설이듯 이끌려 젠과 니코를 따라갔고, 사람도 가게도 거의 없는 비밀 해변의 나무 위에 앉아 바다 위로 떨어지는 해를 오래 바라봤다.


여기 와서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라고, 같이 가자고 해줘서 고맙다고 젠에게 말했다.



 11월 말에 도착한 섬에서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기 위한 훈련 중이었다. 강사과정을 통과하기 위한 기준 수심은 사십 미터였고, 나는 이미 삼십 미터 대를 잠수하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기 때문에 몇 미터 더 가는 일이 크게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잠수 자체를 내 생활의 중심에 두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단련하는 지혜를 살아내는 일이 더 큰 주제였다. 취미로 잠수할 때는 매번 세션마다 어떤 일관성을 가지지 않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하고 다음을 기약하면 말 일이었다. 그러나 강사가 되어 누군가의 낯설고 서툰 다이빙을 동행하기 위해선 나 스스로가 오르내리는 컨디션의 사이클에 영향받지 않고 어떤 일관성을 담지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먼 미래에 함께할 미지의 학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나의 다이빙을 더 단단히 믿기 위해서 나는 꾸준함을 단련하고 꾸준함을 연습했다.

보홀에서 머물던 방, 성탄절 조명이 반짝이는 교회


 일주일은 이런 식으로 흘렀다. 월요일 오전, 오픈 워터 세션. 화요일, 헬스장, 수요일, 오픈 워터, 목요일, 요가, 금요일, 수영장, 토요일, 헬스장... 오픈 워터 세션은 아침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지만, 미리 도착해 천천히 다이빙을 준비하는 시간이 좋아 일곱 시면 집을 나서곤 했다. 서로 사귀고 대화를 나누느라 평소에는 왁자글한 프리다이빙 센터도 아침 시간만큼은 도서관처럼 고요했다. 다가올 다이빙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훈련에 집중하는 선수들이 많기도 하고, 또 서로의 준비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선수들 곁에서 요가 매트를 깔고, 헤드폰을 끼고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자면 어쩐지 나의 다이빙도 그들만큼 진지하고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다이빙이 부드럽고 깊어질 것 같은 기대감이 마음을 마구 부풀게 하다가도, 너무 큰 기대 때문에 되려 몸이 경직되지 않도록 가라앉히고 이완하길 반복한다. 오전 다이빙하는 날 아침의 고요는 그렇게 마냥 평온하지만도, 마냥 흥분되지도 않은 복잡하고 생생한 맛이었다. 그렇게 다이빙을 준비하고, 세션을 마치고 씻고 무언가 먹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침대 위에 쓰러져서 몇 시간을 쉬었다.



 나의 몸은 월경을 한다. 그에 따라 체내 호르몬이 변하고, 몸의 무게, 감각들의 민감도, 수면 주기, 피로도, 입맛 등이 한 달을 주기로 변화한다.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시기엔 보다 거칠고 도전적인 활동을 잘하게 되고, 프로게스테론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더 많이 먹고, 쉬면서 몸을 보듬고 살피는 활동을 잘하게 된다. 피의 주기는 당연히 바다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깊은 수심 훈련 중이라면 최대 수심 도전은 난포기(월경 시작일부터 배란 전까지)에 주로 하게 된다. 이후 황체기(배란 이후부터 월경 전까지)에는 편안한 수심을 여러 번 다녀오는 훈련을 하거나, 기술 훈련 또는 요가나 유산소 운동을 하게 된다. 몸마다 모두 그 변화 양상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분명한 흐름이 느껴진다. 억지로 날짜를 세며 계획하지 않아도, 몸의 느낌과 활동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관계를 맺어가다 보면 점차 신체 리듬에 따라 훈련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내가 다이빙을 하며 만난 대부분의 강사들은 이런 주기를 망각하거나 관심 갖지 않기에 나는 더욱더 나 스스로의 코치가 되어야 했다.



 월경하는 몸과 함께 나름의 익스트림 스포츠인 프리다이빙을 단련하면서, 때로는 단단하게 빚어져가는 몸의 쾌감을 느꼈고 때로는 단조로운 일상의 지루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다시 쾌감으로, 쾌감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을 땐 외로움으로 돌고 도는 순환의 일상이 이어졌다. 스스로 만든 계획을 따라 사는 삶의 좋은 점은 그 계획의 방해 요소도 어느 정도 조절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다. 훈련을 하며 스스로의 훈련생이자 코치가 되어가는 연습의 시간이 당시 나에게는 중요했다. 내 몸(=훈련생)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보다 많은 걸 하도록 이끌고 다독이는 나(=코치)를 동시에 살아가는 시간. 하지만 두 역할이 모두 한 몸 안에 살고 있기도 하기에 자기가 만든 계획의 연속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킬 위험도 존재했다. 독립과 고립의 딜레마. 바다와의 연결감, 자기 몸과의 연결감에는 몰두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주위의 어떤 영향들에 대해서는 둔감해지기도 했다. 나에 비해 훨씬 더 높은 강도로 일상을 단련하는 전문 선수들의 삶이 어떤 건지, 비록 어깨너머로만 볼 수 있대도, 아마 외로움과의 훨씬 강도 높은 싸움일 거라는 짐작이 간다.



 보홀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되어갈 즈음, 낮밤 없이 집이며 가게마다 캐럴과 크리스마스 불빛 장식으로 온 거리가 들썩들썩 축제 분위기였다. 필리핀 사람들은 함께 모여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한다. 집집마다 여느 세간살이보다 스피커나 마이크는 꼭 성능이 좋은 것으로 모셔두곤 한다. 그리고 그게 다 연말연시 파티 기간을 위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몇 날 며칠을 신나게들 논다. 프리다이버들이 초대된 파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 둘 노래방 기계 주위에 모여들어 곡조를 뽑았다. 필리핀에서 연말을 보내며 밀려드는 노래 요청을 모두 막아내기는 아마 장맛비에 옷 말리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젠과 니코는 누군가의 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스치듯 만난 인연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 아니어선지 그들 와도 그저 인사 정도만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며칠 후 우연히 밥을 먹으러 간 곳에서 다시 마주친 것이다. 그날 노을 이후, 해 질 녘이면 한적한 장소에서 만나 노을을 보는 '선셋 그룹'이 만들어졌다.



 달아오른 축제 분위기 때문인지, 강사 과정 기준들을 모두 통과한 후로 수련하듯 매일을 살던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진 건지, 그날 우연한 노을 모임 이후부터 조금씩 프리다이빙과 관련 없는 일정이 달력을 채우기 시작했다. 훈련하지 않는 시간 동안 다이빙이 아닌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나누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다녔다.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해먹기도 하고, 해변에서 기타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기도 했다. 맞춤 맞게 한국에서 나를 방문한 친구 K가 저녁 요리 자리나 모닥불 시간들을 같이 보살펴줬다. 우리는 한 해를 떠나보내며 애도하고, 기도하는 자리도 함께 만들었다. 어느 날은 장대비를 피해 들어간 바에서 음악에 맞춰 한껏 춤을 추던 내게 니코가 말했다. "이런 네 모습을 보는 게 좋네. 너 스스로에게 자유를 준 것 같아서."



 아무도 내게 다양한 바다를 만나라고, 그러려면 떠나라고, 훈련하라고, 더 깊이 잠수하라고, 어떤 기준들을 통과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이 삶을 항해하기 위해 나 스스로 만들어 낸 방식들일뿐이다. 익숙함을 떠나야만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한 먼 곳의 생활 가운데에서도 낯선 존재들과 연결하며 포근함과 충만함을 만들어내기. 바다는 자꾸 내가 한 곳만 바라보느라 잊는 면면들을 들춰 보인다. 아니면 바다 곁에 그런 인연들이 늘 모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여정이 아닌 바다 여정을 선택한 걸로 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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