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째, 10년 지기 친구랑 바다 다이빙(2)
진이 섬에 온 셋째 날 드디어 다이빙을 하기로 했다. 새벽에는 잠깐 소나기가 왔다. 옆에 잠든 진을 깨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센터로 갔다. 뜨끈한 차를 마시며 오늘의 다이빙의 목표를 다졌다. (최고 수심에 가는 게 아니라, 최대한 이완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 다음 삼십 분정도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고, 천천히 장비를 갖춰 입었다. 아홉 시도 안된 시각이지만 열대의 태양은 뜨겁게 빛나고 짙푸른 바다는 하염없이 잔잔하다. 우리는 함께 노란 부이를 붙잡고 수심 20미터 포인트로 발차기를 해서 나아갔다.
고정 부이에 도착하면 우리가 가져간 부이와 연결하고, 무게추가 달린 유도줄을 원하는 깊이만큼 내린다. 줄에는 오 미터마다 검은 테이프로 표시가 되어있다. 진에게 평소 웜업을 하던 수심을 묻고는 그보다 5미터 적게 내렸다. 첫 웜업 다이빙은 그날의 몸상태를 확인하고, 중성 부력(보통 십 미터에 맞춘다.)을 확인하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그날의 가장 깊은 다이빙도, 가장 긴 다이빙도 아니지만, 웜업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다이빙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만만한 수심에서 하는 잠수기에, 그날의 컨디션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당장 웜업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긴장한 사람은 수영하는 발길질의 빈도에서, 부이를 잡은 손에 들어간 힘에서, 물에 들어가기 전 표정에서, 수온이나 조류를 묻는 질문에서, 장비를 챙기는 동안의 침묵에서... 보이는 단서가 있다. 바다 다이빙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첫 입수 후에 확 몰려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강사로서, 아니 조금 더 바다가 편안한 동반자로서 나의 상호작용은 그 자그마한 관찰들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긴장감을 적극 표현하며 도움을 청하고, 소통하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꾹꾹 속으로 집어삼키며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는 이도 있다. 그건 평소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함께한 강사 또는 버디와의 관계에서 오는 역동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진의 태도는 후자에 가까웠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몇 번씩 짐을 다시 챙기는 모습에서부터 긴장이 역력했다. 게다가 오직 다이빙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먼 길을 오는 동안, 머릿속에 온갖 기대와 걱정이 자라났을 터. 친구 관계는 슬슬 접어두고 본업(?)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이완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다이버로서의 나를 성장시키는 물음이기도 하고, 강사로서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찾은 그 답은 다이빙 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되기도 한다. 말로써, 논리로서 설명하긴 참, 불가능한 건 아닌데... 애매하다. 그게 다가 아닌 느낌. 머리로 하는 이해와 설명, 언어적인 부분보다 더 중요한 건 안내를 하는 내가 긴장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것'. 돌이켜보면 내게는 그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다. 이를테면 내 강사 트레이너가 깊은 잠수 직전 수면에서 이완할 때의 그 표정과 존재감, 고요 같은 것이 내 기억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완' 잘하기에 도움이 될 만한 재료들>
- 잠수 관련 물리학, 생리학적 이론을 이해하는 것
- 요가, 스트레칭
- 집중 명상이나 심상화 등 심리 훈련법
- 준비호흡 충분히 하기
- 드라이(물 밖에서 할 수 있는) 훈련
- 마음이 잘 맞는 버디나 안내자
- 다이빙 전후 받는 코칭
- 물에서 많은 시간 보내기
- 다양한 잠수 장소 경험
- 다이빙로그 쓰며 자기 분석
- 과도한 목표를 이루려 욕심내지 않기
- 바다 환경에 대한 이해와 사랑
...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중 한두 개만 시도해 봤는데 맞지 않아 실망했다면, 다른 걸 찾아보자. 각자 자신만의 상황과 성향에 맞는 레시피를 찾아나가면 된다. 어떤 시기에는 큰 도움이 됐던 도구가 다음 단계에선 소용이 없을 수 있다. 이를테면 특정 시기에 나는 무조건 다이빙 시작 두 시간 전에는 센터에 가서 스트레칭과 명상을 하며 준비할 때 긴장도가 낮아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한 시간이라도 더 침대에 뒹굴다 딱 장비 입을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것이 마음이 가볍다.
다시 진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운이 좋은 강사이기도 하다. 그래도 몇 년을 알아오면서 대충 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 내용을 토대로 안내할 수 있어서. '보통은 웜업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이번에는 어떤 느낌이었어?' '이번에는 다른 거 말고 오직 귀의 느낌에만 주의를 기울여볼까?'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며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오 미터, 칠 미터, 구 미터... 내려갈 때마다 점점 진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나중에는 멈춘 건가 싶게 숨이 길어졌다. 잠수 시간이 1분은 쉽게 넘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십오 미터까지 수월하게 다녀왔다. 다이빙하면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압박을 느끼며 억지로 참는 숨이 아닌 다이빙은 처음이었다고. 특히 '충분히 쉬어. 준비가 되면 다녀와.'라는 말에 안도가 되었다고 했다.
나를 가르쳐준 강사도 그런 말로 타이르곤 했었다. 준비호흡(입수 직전 호흡을 가다듬으며 준비하는 시간. 대부분 다이버들의 2분 내외의 시간 동안 침묵 속에 내면으로 침잠한다)이 너무 짧다고, 방금 전까지 대화하던 상태 그대로 잠수하지 말라고 했다. 옆에서 버디나 다른 다이버, 강사가 모두 침묵 속에 나의 다이빙만을 기다리는 준비호흡 시간. 안전한 프리다이빙을 위해선 꼭 필요한 단계인만큼, 그 시간이 길다고 불만을 갖는 이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독촉장이 날아오는 기분이 있다. 사람들이 고요 속에 나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내가 빨리 하지 않으면 그들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그 느낌. 버디끼리 서로의 다이빙을 가까이서 지켜봐 주며 구조자 역할(safety)을 맡아주는 것이 엄연한 다이빙 규칙인데도 그런 마음이 든다. 집단에서 튀지 않으려는 K 유교문화의 압박이었을까? 여럿이 함께하는 다이빙 세션에서 내 준비시간 충분히 갖기가 완전히 괜찮아지기까진 그 후로도 꽤나 오래 걸렸다. 진의 소감을 들으며 그도 이런 감정을 느껴왔겠구나 싶다. 언제 어디서나 집단보다 자기 욕구를 앞세우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잠수 직전, 준비 호흡 2분의 시간만큼은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모두의 안전과 재미를 보장하는 일이다. 내가 이완되고 즐거울 때 그 좋은 기운이 주위에까지 전염된다고 생각하자! 긴장감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민폐'에 대한 민감도를 가진 다이버에게는 이런 믿음을 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이에 나가서 유도줄을 따라 오르내리는 훈련만 하지는 않았다. 연산호 군락지에 가서 스노클도 하고, 진의 인생 첫 바다거북이도 만났다. 날이 갈수록 흐물흐물해지는 그의 물속 움직임을 보며 내 마음도 반짝거렸다. 나에게는 물속에서 편안하게 움직이는 몸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진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이 뭔지 알아? 그게 사실 나답다, 자기답다는 말에서 온거래.'
다이빙에서든 아니든, 내 친구 진이 계속 자기다울 수 있길. 우리가 서로 더 자기답게 되도록 응원하는 관계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