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일째, 카미긴에서 흔들리며 이동하기
나에게는 야망이 있다. 어떤 바다에 가든지 그곳에 이미 살아가는 존재들과 거스름 없이 어우러지고 싶다는 야망.
일명 '로컬'의 정의는 좁게는 보트 크루나 안전 요원, 다이브 가이드 등 바다로 향하는 길에 마주하는 얼굴들에서부터 바닷속에 사는 거북이, 산호초, 고래상어나 해변의 흰 모래들까지 얼마든지 널리 적용될 수 있다. 다이빙 업계나 숙박업 종사자는 결국 다채로운 바다 환경과 연결된 존재들이다. 운송업, 요식업 등도 마찬가지다. 순전히 '다이빙을 하는 소비자'로서의 개인적인 시선에서 보면 나를 바다로 이동하게 해 주고,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연결된 존재들이 없이는 어떤 수심에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촘촘한 연결망에서 나의 위치를 알아차리며 만족스러울 만큼 관계하는 일은 꽤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나의 생존, 우리의 생존, '생태계' 그 자체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망(野望)이라고 느낀다. 혼자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내겠다는 뜻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바다의 로컬들을 널리, 깊이 바라보겠다는 의미에서.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고 나서 외국인이 아닌 필리핀 사람이 가르치고 운영하는 센터에서 일하기로 한 것이 그 첫 단추였다. 센터는 카미긴의 오래된 숙소인 K 롯지 안에 있었고, 그 롯지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서 직원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인상 깊게 봤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일하려는 환경의 기준이 다 다를 테다. 나에겐 우선 '로컬들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일하는 게 중요했다. 아무리 손님이 많고, 시설이 좋고, 임금을 많이 주는 업체이더라도 직원을 함부로 하대하는 곳에서는 바다를 안내하고 싶지 않다. 다이버들 사이에 해양 생물을 만지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고, 서퍼들 사이에도 그 지역 서퍼들의 예절에 따른다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이런 원칙을 가지고 하는 여행을 '공정 여행'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좀 더 곱씹어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그런 야망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인종적으로 아시안이면서, 국적으로는 한국인인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다이빙 여행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유럽인/백인도 아니고 현지인도 아니다. 한편으론 화폐가치나 소득 수준 따위의 통상적인 경제 지표로 따졌을 때 이곳 필리핀의 섬보다 '우위'를 점하는 사회에서 (그만큼 환경에 미치는 파괴력은 훨씬 큰 사회에서) 왔다. 비자 없이 여러 나라의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국적 권력의 소지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햇볕에 쉽게 그을리는 피부가 때론 '한국 사람 맞아?'라는 질문을 자주 일으킬 만큼 필리핀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 외양을 지녔다.
나는 유색 인종이자 아시안이다. 하지만 아시아는 참으로 넓다. 그에 비해 한국 사회 안에서 내가 만나온 아시안의 범주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로 자신과 사회 경제적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주로 생활반경이 갖춰지지 않나? 한 곳에 오래 살면 그게 답답해 여행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내 삶의 참조점이 되어주는 테두리를 확장하고 싶을 때. 인간 종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때로 불안정하고 취약해지더라도 이동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동을 하며 비록 잠깐이지만 우리는 '아무도' 아니게 되는 경험, 그럼으로써 전혀 다른 '누군가'에 가까이 가볼 수 있는 경험을 한다. 게다가 나는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을 체류하게 돠 셈이니까.
다종적인 정체성은 혼란스러운 경험이다. 적어도 '주류' 한국인으로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곤 했던 한국 사회에서의 나의 생활과 비교했을 때는 그렇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한국어를 구사할 거라 쉽게 기대하고, 또 나도 내 한국어가 틀릴까 봐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관된 패턴이 없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영어로 말을 걸고, (외국인이라 예상한 것) 누군가는 비사야어나 타갈로그어로 말을 건다. 한국말이나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드물게 있다. 내 영어 대답을 들으면 흔히들 '영어를 잘하는데 어디서 배웠어? ' 묻곤 한다. 내 영어 발음에는 여전히 아시안이 묻어있나 보다.
그런 내가, 현지 언어 조금과 아시아틱한 영어로 소통하고 대충 아시아인처럼 생겼지만 어딘가 현지인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내가, 모종의 국제 정치경제 구조로 인해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내가 이곳에 나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갈 이들과 맺을 수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 답을 내리기는 어렵고, 그래서 흥미롭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로컬'들과 존중하며 관계 맺는 하나의 도구는 돈을 쓰지 않는 만남이다. 함께 걷거나, 수영하거나, 집으로 초대해 밥을 해 먹거나, 언어 교환을 한다. 붓글씨를 써서 선물하거나 우쿨렐레를 치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다. 카미긴에서 진행한 주 3회 요가 수업에 롯지 직원들은 참가비를 받지 않았다. 주기만 한 건 아니다. 받기도 했다. 돈의 교환이 연루된 만남이 무조건 진실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생활이 오로지 돈이라는 도구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에 작은 파문을 던지고 싶을 뿐이다. 돌봄, 시간, 질문, 춤, 모닥불, 웃음... 돈을 거치지 않는 교환을 통해서도 우리의 순간들이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음을 잊지 않고 싶다. 아니, 애초에 그 풍요가 먼저였고 화폐 도구는 그저 보조수단일 뿐이 아니었던가.
K 롯지와 다이빙센터는 나의 여러 관계 실험들을 언제나 환영해 주었다. 이미 k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지역 사회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들이 많았다. (지역 유기농 농장을 방문해 수확 체험을 하고, 그 작물로 만든 식사를 하는 투어가 있기도 했다.)
카미긴을 떠나기 몇 주 전에 이야기 모임을 열었다. K 롯지에서 일하는 제임스가 필리핀의 고문자(바이바인)로 시를 즐겨 쓴다는 사실을 듣고 불이 붙은 작당이었다. 어느 별이 반짝이는 저녁, 우리는 바닷가 테라스에 둘러앉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각자 자기에게 편한 언어로 쓴 글을 읽고 들었다. 제임스는 카미긴 바다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읽었다. 나는 내 생일에 했던 다이빙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체성들부터 지역 주민들과 맺는 관계까지, 바다는 경계가 없이 번져나갈 수 있다. 바다 생태를 존중하며 안내하는 나의 일에는 바다 주위에 깃들어 사는 이들을 이해하고 살피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나의 특권적 위치로 인해 자칫 이들을 착취하게 되지 않기를. 바다를 사랑하느라 바다 주위를 보지 못하게 되지는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