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만큼, 돌려주는 일

해수가 만난 사람 4 - 탄소중립 연구자 박지영 교수

by 파도


'탄프로페썰'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단어를 묶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탄소, 프로페서, 이야기.
딱딱하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이렇게 말랑한 단어로 끌어오다니.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대화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박지영 교수에게 처음 연락을 드린 건 이메일이었다.
그가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서면 인터뷰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에게서 반가운 답장이 왔다.
“마침 서울에 갈 예정입니다. 직접 찾아뵐게요.”

며칠 뒤, 그는 정말 학교, 사무실로 찾아왔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고,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동자가 빛난다. 정중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한 사람의 태도는 말을 건네기 전에도 전해지는 법이라는 걸, 그날 다시 느꼈다.


탄소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농경제사회학을 전공하고, 왜 탄소인가?

도시와 지역, 기후와 에너지, 경제와 사회의 구조는 유기적이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탄프로페썰’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를 가능한 한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는 실험이었다.
그 안에는 통계와 모델, 정책과 산업에 대한 분석이 있지만, 어떤 장면에서도 말이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설명하는 기후는, 지금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돌아오는 여름의 기온과,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 속에 있는 문제다.

그는 말한다. 탄소 배출은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무엇을 사고, 어떻게 이동하고, 무엇을 먹느냐는 모두 환경에 연결되어 있고,
그 영향은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온다고.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은 이미 1.5도 가까이 올랐고,
그 변화는 이상기후, 식량 불안정, 생태계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탄소중립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할 방식이라고.
그리고 그 변화는 정책 이전에, 사람의 실천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고.

박지영, 미 버팔로 주립대 종신교수

그가 설립한 ‘뮤레파 코리아’는 작지만 실험적인 조직이다.
이미 주 4일제를 운영하고 있고, 경력단절 여성 인재를 채용하며, 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교육 콘텐츠를 만든다.
이윤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 작은 회사는,
그가 말하는 ‘사회적 환원’의 구체적인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일이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사람이, 방학이면 한국으로 날아와 콘텐츠를 만들고 강연을 하고, 정책 토론에 참여하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


연구만 해도 벅찬 자리에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연구 밖의 영역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이론을 넘어서서,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실제로 실행하는 일.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학자들이 쉽게 가지 않는 길이고, 쉽게 버티기도 어렵다.

그 말에는 선의보다는 책임의 감각이 더 가까워 보였다.

받았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그는 학창시절 총동창회 특지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였고, 그 도움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그뿐 아니라, 미국 유학도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했다.

받은 게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개인의 성공으로만 여기지 않는 사람.
그래서 지금,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하는 사람.


그의 첫 전공은 불교학이었다.
그가 오래 붙들고 있었던 질문은 “불평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 수 있을까”였다고 한다.
그 질문은 이후 사회학, 경제학, 기후와 농업, 도시와 산업으로 흘러가면서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보는 기후위기는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 기술이 작동하는 논리,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
그래서 그는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분석 모델을 만들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만든다.
그리고 그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나누려 한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세상은 주어진 것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긴다고.
스스로 받은 것이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돌려줄 이유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들어올 사람에게 점점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그런 풍경 속에서, 박 교수의 철학은 이질적일 만큼 낯설다.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세상에 이로움이 되는 것’이라 대답할 수 있는 사람.
그 말은 그저 멋진 이상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간에서 비롯된 결론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이라는 제약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 경험이 그에게 질문을 남겼고,
그 질문이 지금의 사유를 만들었고,
그 사유가 지금 그를 이끌고 있다.


여러 인터뷰이 중에서, 박 교수는 유일하게 내 생일을 기억하고 케이크를 보내주셨다.
그건 작은 일이었지만, 잊히지 않는 일이었다.
그의 말과 글, 강의와 기획은 언제나 구조를 향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금 ‘탄프로페썰’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만든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교재와 책, 그리고 실시간 교육 콘텐츠까지.
기후위기를 누구나 자기 언어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 이어간다.


박지영 교수는 환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환경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일과 언어, 태도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가 더 많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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