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박물관에서 뜻밖의 발견

우리만의 것인 줄 알았던 민속놀이가 인도에도?

오랜만에 초미세 먼지가 걷혀 파란 하늘이 드러난 화창한 2025년 12월 어느 날 무작정 구글 맵을 켜고 박물관을 검색해 보았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무려 동물원과 박물관이 같이 있었다.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오랜만에 보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에 이끌려 무작정 차를 몰았다.


고풍스럽고 산뜻한 옥색의 작은 유럽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는 동물원 입구가 로마 유적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인도식 건물 보다 영국 식민지식 건물이 더 많은 뭄바이만의 정취이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오랜 몬순(몇 달 동안 줄곧 비가 오는 인도의 우기)이 끝나고 건조한 겨울(아침저녁 20도, 낮 28도 정도)이 온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드는 계절 때문일까, 문을 열자 나타난 공간은 해리포터티니핑이 손잡고 나올 듯한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고색창연한 회전식 개찰구가 눈길을 끌었다. 오~! 이런 골동품이 한 뱡향으로만 돌아가는 문의 조상님이시구나...라는 감탄과 달리 앞뒤로 다 움직이는 반전의 즐거움을 느끼며, 뭄바이 로컬 박물관... 기껏해야 30분이면 다 둘러보겠지...라고 생각했던 무례한 무지와는 달리 두 시간 넘게 흥미로운 발견에 다리가 아픈 지 조차 잊어버렸다.

Dr. Bhau Daji Lad Museum (https://www.bdlmuseum.org/)

바우 다지 라드 박사 박물관은 인도 뭄바이의 역사, 예술, 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이다. 1957년 설립된 뭄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비쿨라 동부(Byculla East) 교외의 비쿨라 동물원 근처에 있다.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Bombay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1975년 11월 1일, 박물관 설립에 비전과 헌신을 보여준 인물을 기리기 위해 Dr. Bhau Daji Lad Museum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우 다지 라드는 뭄바이 최초의 인도인 보안관(Sheriff)이었으며, 자선가·역사가·의사·외과의사였고, 박물관이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 박물관 위원회의 서기이기도 했다.(위키피디아)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은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로 보내진 예술품과 그 복제품들로 19세기 영국의 식민지 봄베이 예술학교 학생(아마도 공예품 세공 장인)들이 만든 감탄이 멈추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상아, 은, 구리 세공 제품들이 가득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19세기 당시 국제도시였던 뭄바이의 다양한 민족과 직업(자띠), 다양한 카스트, 생활 풍속을 재현한 디오라마들이었다. 아직 몇 글자 밖에 읽지 못하는 힌디어 글자(데바나가리)를 GPT에 물어봐 가며 천팔백 년대의 인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 2에서 강하늘이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을 보여줬던 공기놀이, K-놀이도 세계의 트렌드가 되었다며 뿌듯 놀라워하는 뉴스영상과, 여러 나라 사람들이 공기놀이를 해보는 쇼츠가 유튜브에 도배되다시피 했던 그 공기놀이가...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시절, 나무 책걸상 다 앞으로 밀어 놓고 교실 뒤에 옹기종기 모여서 왁스랑 걸레로 빤짝빤짝 나무 바닥을 광을 내고 그 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던 그 공기놀이... 콩콩 두 알 잡으면 5점, 콩콩콩 세알 잡으면 몇 점이었더라... 기억이 가물한 그 공기놀이가


인도에도 있었다. 규칙마저 똑 닮은 하트바르짜.

हातवरच (HATVARCHA)는 봄베이가 있는 마하라슈트라주 사람들이 쓰는 마라티어로 Hat (손) + Varcha (위의) → “손 위에서 하는 놀이”라는 뜻이다. 손근육 발달과 민첩성에 도움이 되어서 여자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남자아이들도 즐겨했다고 같이 동행한 인도인 친구가 설명을 해주었다.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이 신라의 석굴암으로 전해졌다는 불교 미술사와 김수로 왕의 부인 허황옥의 신화 같은 이야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같은 고대의 교류 정도가 한국과 인도가 공유하는 문화의 전부라 생각했는데, 이런 뜻밖의 닮은 모습에 앞으로 펼쳐질 인도에서의 나날이 힘들지많은 않을 것 같은 낙관이 움트기 시작했다.


고작 공기 하나에 이런 용기를 얻었는데... 공기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말뚝박기 가마 타기 놀이마저 너무나 똑 닮은 모습에 아이처럼 들떠버렸다. 가마 타기 놀이에 적혀있는 PALKHI는 가마라는 뜻의 단어로 그 놀이의 이름마저 같았다.

유튜브 속 극악한 위생의 길거리 음식과 갑자기 춤추는 마살라 영화, 기이한 요기들의 고행, 슬럼가인 다라비와 인도에서 제일 큰 노천 세탁마을 도비가트 탐험과 같은 빈곤 포르노. 이런 콘텐츠의 홍수 탓에 인도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요지경 같은 세계라고 은연중에 속단했었는데, 날씨에 이끌려 무작정 둘러본 조그만 박물관에서 나의 편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냉전이 종식된 지 이제 겨우 한세대가 지났을 뿐인데, 지구촌이란 단어 속에 화해와 개방이라는 꿈은 공통점 보다 차이점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대체되고 있다. SNS로 흐려진 눈을 비비고 직접 세상을 바라보면 우린 놀랄 만큼 닮아있는 인간일 뿐이란 걸 다시 깨닫는 날이 오기를 뭄바이의 작은 박물관에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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