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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21. 2021

진입장벽이 만리장성인 경북 청송의 중식 노포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고향식당

태백산맥 끝자락 주왕산을 끼고 있어 첩첩산중 둘러싸인 청송은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슬로시티>이다. 이런 한적한 지방도시에선 외부 세계의 유행과는 무관하게 그 옛날 그 시절 음식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영주의 서부냉면이 그러했고, 문경 점촌의 동성반점 역시 그러했다.


시골 밥집같은 푸근한 이름의 중식당 (교체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간판이  어색하다)

청송에서 중식당을 운영한 지 50여 년 됐다는 노부부의 <고향식당>은 지방 권력의 정점인 군수도 감히 찾아오지 못할 만큼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다. 이 식당은 청송군청 인근에 자리 잡아 평일 점심시간 군청 공무원들의 맛집으로 사랑받고 있는데, 군수가 방문하면 일반 직원들이 불편해하니 여주인장께서 군수에게 직접 <방문 금지령>을 내린 것이 2005년 즈음이고, 이 전통은 여전히 지켜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향식당 내부 (5 테이블 정도의 소규모 식당)

군수에게도 오지 마라 할 정도이니 일반 손님에게도 수틀리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 하고 마시는 여사장님의 입담은 좀 부담스럽긴 하다.


고향식당의 주의사항

이 집에서 짜장면을 먹기 위한 진입 장벽을 설명하자면!

1. 현금 결제만 가능하고

2. 청송군청 직원들이 점심 식사하러 쏟아져 나오는 점심 시간대에는 30인분 한정 판매이고

3. 혼밥은 13~14시 사이만 가능하며

4. 외부 손님이 많은 휴가철인 7~9월은 아예 휴업을 한다.

5. 탕수육은 오후 늦게부터나 가능하다.


이렇게 음식을 즐기기 위한 진입장벽이 원체 높다 보니 반백여 년이나 묵은 노포가 변변한 인터넷 후기조차 몇 되지 않는다.


난 운 좋게 사람들이 몰리기 전인 11시 방문한 데다 아이가 있어서 그런건지 할머니께서 탕수육 주문을 받아주셔서 먹어볼 수 있었다. 식사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음식에 들어간 정성과 맛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수타로 면을 뽑고 계신 할아버지

주문 즉시 할머니께서 밀가루를 바가지에 담아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할아버지께서 수타면을 뽑아내신다. 짜장 역시 계속 끓여 내주는 동네 일반 중국집과 달리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야 조리하시는데 <청송군청 공무원의 해장음식>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있는 데다 맛이 편안하다.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맛을 내는 짜장 소스

일반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고 속이 더부룩한 이유는 밀가루를 먹어서라기보다 조미료 가득 들어간 소스의 영향이 큰데, 이 집의 춘장은 <콩맛>이 은은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자표 춘장 특유의 카라멜 단맛이 빠진 대신 그 자리를 고소함과 순함으로 채워 넣었다.


첨가제를 넣지 않은 부드럽고 편안한 면발

통상 짜장면이 불기 시작하는 시간이 조리 후 3~5분 경과하면서부터이다. 면이 불어 터지지 말라고 넣는 것이 면 강화제인데, 이 집은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 면이 하얗고 부드러운 식감 속 수타면 특유의 탱글함이 살아있다.


이 집이 지역 맛집인 것은 토요일 점심 먹으러 들어오는 현지 주민들과 노부부 사장님 내외 허물없는 사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탕수육 진입 장벽이 어찌나 높은지 단골손님들조차도 우리 테이블의 탕수육을 보시고는 "우리도 주문해도 되능교?"를 외치신다. 물론 할머니께서 탕수육 먹으려면 새벽같이 나오던지 오후 늦게 오라며 거절하셨지만..


천연과일로 단맛을 낸 고향식당의 탕수육

탕수육 역시 이 집만의 특징이 있다. 잡내 하나 없는 고기, 깨끗한 기름으로 제대로 튀겨낸 고기 튀김의 식감, 천연의 단맛을 내기 위한 키위와 귤, 꽃 모양으로 깎아낸 오이와 당근은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노사장님 내외가 얼마나 큰 정성을 불어넣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도 잘 하는 건가 싶다. 지방 도시 노포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문하는 이들에겐 이 집에서의 식사가 당혹스러운 경험이 될 공산이 크다. 실제 할머니께서도 그런 도시 손님들에게 받은 서운함이 분명 존재할 테고..

그럼에도 이 식당과 음식에 대해 자세히 기록함은 노부부의 건강이 다하는 날 문을 닫을 테고, 머지않은 그날이 오면 반백여 년 넘게 음식에 정성을 다한 노부부의 노력을 누군가는 기억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이다.  



※ 해당 식당은 2023년 4월 폐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남겨놓는 이유는 글 말미에 밝힌 것처럼 오십여년 동안 음식에 정성을 다한 노부부의 노력을 누군가는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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