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고향식당
태백산맥 끝자락 주왕산을 끼고 있어 첩첩산중 둘러싸인 청송은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슬로시티>이다. 이런 한적한 지방도시에선 외부 세계의 유행과는 무관하게 그 옛날 그 시절 음식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영주의 서부냉면이 그러했고, 문경 점촌의 동성반점 역시 그러했다.
청송에서 중식당을 운영한 지 50여 년 됐다는 노부부의 <고향식당>은 지방 권력의 정점인 군수도 감히 찾아오지 못할 만큼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다. 이 식당은 청송군청 인근에 자리 잡아 평일 점심시간 군청 공무원들의 맛집으로 사랑받고 있는데, 군수가 방문하면 일반 직원들이 불편해하니 여주인장께서 군수에게 직접 <방문 금지령>을 내린 것이 2005년 즈음이고, 이 전통은 여전히 지켜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군수에게도 오지 마라 할 정도이니 일반 손님에게도 수틀리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 하고 마시는 여사장님의 입담은 좀 부담스럽긴 하다.
이 집에서 짜장면을 먹기 위한 진입 장벽을 설명하자면!
1. 현금 결제만 가능하고
2. 청송군청 직원들이 점심 식사하러 쏟아져 나오는 점심 시간대에는 30인분 한정 판매이고
3. 혼밥은 13~14시 사이만 가능하며
4. 외부 손님이 많은 휴가철인 7~9월은 아예 휴업을 한다.
5. 탕수육은 오후 늦게부터나 가능하다.
이렇게 음식을 즐기기 위한 진입장벽이 원체 높다 보니 반백여 년이나 묵은 노포가 변변한 인터넷 후기조차 몇 되지 않는다.
난 운 좋게 사람들이 몰리기 전인 11시 방문한 데다 아이가 있어서 그런건지 할머니께서 탕수육 주문을 받아주셔서 먹어볼 수 있었다. 식사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음식에 들어간 정성과 맛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주문 즉시 할머니께서 밀가루를 바가지에 담아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할아버지께서 수타면을 뽑아내신다. 짜장 역시 계속 끓여 내주는 동네 일반 중국집과 달리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야 조리하시는데 <청송군청 공무원의 해장음식>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있는 데다 맛이 편안하다.
일반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고 속이 더부룩한 이유는 밀가루를 먹어서라기보다 조미료 가득 들어간 소스의 영향이 큰데, 이 집의 춘장은 <콩맛>이 은은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자표 춘장 특유의 카라멜 단맛이 빠진 대신 그 자리를 고소함과 순함으로 채워 넣었다.
통상 짜장면이 불기 시작하는 시간이 조리 후 3~5분 경과하면서부터이다. 면이 불어 터지지 말라고 넣는 것이 면 강화제인데, 이 집은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 면이 하얗고 부드러운 식감 속 수타면 특유의 탱글함이 살아있다.
이 집이 지역 맛집인 것은 토요일 점심 먹으러 들어오는 현지 주민들과 노부부 사장님 내외 허물없는 사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탕수육 진입 장벽이 어찌나 높은지 단골손님들조차도 우리 테이블의 탕수육을 보시고는 "우리도 주문해도 되능교?"를 외치신다. 물론 할머니께서 탕수육 먹으려면 새벽같이 나오던지 오후 늦게 오라며 거절하셨지만..
탕수육 역시 이 집만의 특징이 있다. 잡내 하나 없는 고기, 깨끗한 기름으로 제대로 튀겨낸 고기 튀김의 식감, 천연의 단맛을 내기 위한 키위와 귤, 꽃 모양으로 깎아낸 오이와 당근은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노사장님 내외가 얼마나 큰 정성을 불어넣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도 잘 하는 건가 싶다. 지방 도시 노포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문하는 이들에겐 이 집에서의 식사가 당혹스러운 경험이 될 공산이 크다. 실제 할머니께서도 그런 도시 손님들에게 받은 서운함이 분명 존재할 테고..
그럼에도 이 식당과 음식에 대해 자세히 기록함은 노부부의 건강이 다하는 날 문을 닫을 테고, 머지않은 그날이 오면 반백여 년 넘게 음식에 정성을 다한 노부부의 노력을 누군가는 기억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이다.
※ 해당 식당은 2023년 4월 폐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남겨놓는 이유는 글 말미에 밝힌 것처럼 오십여년 동안 음식에 정성을 다한 노부부의 노력을 누군가는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