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용문동 창성옥
전국 팔도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 수도 서울이다 보니 오히려 이것이 바로 서울만의 음식이다 싶은 메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음식에 조예가 깊은 이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해장국에 <서울식>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일 테다.
해장국이 서울의 상징이 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경으로 짐작된다. 1937년 개업하여 80여 년이 훌쩍 넘은 노포, 청진옥의 자료를 살펴보면 나무장작을 팔기 위해 가평, 양평 등지에서 달구지에 나무를 싣고 사대문 안으로 온 이들이 짐을 부리고 아침밥으로 해장국을 먹으며 서울식 해장국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이야 돼지뼈를 주재료로 만든 감자탕 식당이 흔해졌지만, 서울식 해장국은 소뼈를 기본으로 했다. 서울에서 숱한 시간을 보낸 청진옥, 어머니대성집, 그리고 창성옥이 소뼈를 근간으로 한 해장국을 낸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서울식 해장국>은 소뼈 육수와 된장을 기본으로 하되 우거지와 선지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청진옥이 선지와 내장, 콩나물이 주재료인 반면 창성옥은 선지와 소뼈, 배추속대와 파절임 양념장이 들어간다는 점에선 약간 결이 다르다.
메뉴판을 보면 창성옥이라는 상호명 위에 <배추속대> 그림이 있는데, 실제 양념장을 섞지 않고 국물을 떠먹어보면 “된장 얼갈이국” 느낌이다. 창성옥의 상징물을 배추속대로 한 것은 주인장께서도 여타 서울식 해장국과 다른 아이덴티티를 그리 삼은 모양으로 추정한다.
여타 서울식 해장국과 맛을 비교하자면 된장의 농도가 진해서인지 경쾌함은 덜 했다. 국물을 입에 넣으면 속이 확 풀리는 시원함이라기보다 폭음과 구토로 비워진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느낌이 강했다. 실제로 밥 위에 계란 후라이 노른자를 터뜨리고 배추에 선지를 둘둘 말아 얹어먹는 그 한입이 이 식당의 최고 한입이었다.
이 사진 속에는 가게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이 식당의 개업 연도는 용문시장 개장 연도인 1948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식당을 창업한 노부부는 30여 년을 운영하고, 함께 일했던 직원에게 가게를 매매하는데 바로 이 분이 창성옥의 2대 사장이다.
지금은 마흔을 넘긴 아드님께서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 중인데 그림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쳐다보는 아이가 바로 3대 사장이다.
당시 2대 사장이셨던 어머니께선 연탄불로 계란 후라이를 하고 계시는 풍경..
이 식당의 히스토리를 알아야 해석이 되는 그림이다.
# 추가잡설
돼지뼈 해장국이 외식업계에서 서민음식으로 애호받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부터이다. 돈암동 소재 태조감자탕의 개업은 1958년이지만, 감자탕 단일 메뉴 식당으로 거듭난 시기 역시 1971년이라고 알고 있다. 급속도로 추진된 경제부흥 정책은 육류의 소비를 진작시켰으나 소고기는 여전히 비쌌으니 서민을 중심으로 돼지고기 수요가 크게 늘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정부는 양돈 산업을 장려하였으며, 돈육 공급이 증가한 만큼 부산물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하게 되었다. 마포 등지에서 돼지갈비가 유행했던 것이 1970년대, 삼겹살이 국민음식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이 불과 1980년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