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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23. 2021

Since 1988, 동대문 노포의 불꼬지 백반

서울시 종로구 종로 5가 송정식당

빛나는 경제 성장으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품목 중 하나가 바로 <연탄>이다. 석유보일러의 유행과 도시가스의 공급으로 연탄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마흔 중반을 넘어선 세대에게 있어 연탄은 분명 아득한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향수가 담겨 있다.

가정용 연료로 사랑받던 연탄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연탄은 난방 화력원뿐 아니라 그 옛날 어머니들이 아침마다 연탄불로 뚝배기를 끓이고, 고기와 생선을 구워주던 조리 화력원이었으며, 눈 오는 날에는 연탄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고, 염화칼슘이 흔치 않던 시절엔 빙판길 미끄러지지 말라고 연탄재를 뿌렸던 경험이 있던 세대에게 <연탄 불향>이 입혀진 음식은 문득 과거 어느 시점으로 회귀케 하는 타임머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은 좁고, 허름하지만 연탄불로 구워낸 유년시절의 향수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인가 보다.


동대문 먹자골목의 송정식당

생선구이 식당들과 닭한마리 식당들의 중간 경계 지점에 <불꼬지 백반>이라는 신기한 이름의 고추장 양념 돼지고기를 연탄불로 파는 식당이 있으니 1988년 개업하여 30여 년을 훌쩍 넘긴 송정식당이다.


불꼬지백반과 김치오뎅볶음

이 식당을 처음 방문했다면 여타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생소한 메뉴인 <불꼬지 백반과 김치오뎅볶음 조합>으로 주문할 것을 추천한다. 불꼬지 백반을 주문하면 순두부찌개가 서비스로 제공되니 국물과 구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푸짐한 한상이 마련된다. 순두부찌개가 별맛은 아니다만, 그래도 6천 원 가격이 적힌 정식 메뉴인데 공짜로 받으니 괜히 횡재한 기분이다. 심지어 연탄불로 지은 음식의 맛을 향수하는 세대에게 영원히 사랑받는 반찬인 계란 후라이까지 제공되니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연탄불로 구워내는 석쇠양념구이

고춧가루 간장 베이스의 달달한 양념 고기에 불향이 더해지니 식대만 저렴할 뿐 근사한 한식집 음식 못지않다. 석쇠에 고기를 잔뜩 올려 연탄불로 구워내시는 사장님께 <불꼬지>에 담긴 유래를 여쭤보니 식당을 개업했던 초기에는 고기를 <대나무 꽂이>이 꿰어 구워냈다며 그래서 불꼬지라는 이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하신다.


맛깔스러운 반찬과 계란후라이

내친김에 노포 백반집의 특성상 솜씨 좋은 여주인장의 고향을 상호로 내건 경우가 많으니 혹시 고향이 <광주 송정역> 근처냐 여쭤보니 역시나 그렇다고 하신다. 어쩐지 반찬으로 내주신 된장 열무 무침과 고추지가 맛깔스럽다 했더니 호남의 손맛이 담겨있었구나 싶었다.


연탄불향이 입혀진 고추장 양념 석쇠구이를 상추쌈에 마늘을 얹어 입에 욱여넣으니 든든함을 넘어 행복감이 차올랐다. 오뎅은 김치와 궁합이 좋은 음식인데, 의외로 이 조합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은 인사동 <간판없는 김치찌개집> 외에는 보지 못 했다. 달달하면서도 경계는 넘지 않는 과하지 않은 설탕 사용이 김치오뎅볶음의 비결 같은데, 역시나 이 메뉴도 밥도둑이었다.


# 추가잡설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만 해도 변변한 이름을 갖지 못 했던 시대이다. 지금이야 딸이 더 효도한다며 아들보다 낫다 하지만, 2000년 전후만 하더라도 보수적인 지방 중소도시에선 딸이면 낳지 않겠다는 일이 왕왕 있어 아기의 남녀 성별을 일러주지 않았었더랬다.


1960년대 남아선호 시대상을 그린 드라마, 아들과 딸 (출처 : MBC)

1993년 방송된 최수종, 김희애 님 주연의 드라마, <아들과 딸>은 이런 남아선호 사상이라는 시대상이 잘 반영된 드라마이다. 함께 태어난 이란성쌍둥이 남매인데, 아들 이름은 귀하니 <귀남>이고, 딸은 이후에도 아들 동생을 잘 돌보라 하여 <후남>이라 이름을 지었을 지경이니..

새우깡이 100 원하던 시절이고, 연탄불로 뚝배기를 끓이고 냄비밥을 짓던 시대의 일이다.

그래서 이 시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나선 솜씨 좋은 어머님들이 차린 백반집 상호는 번듯한 의미가 담긴 이름이 아니라 여주인장이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부르던 광주댁, 충주댁, 경주댁 등이 바로 가게 이름으로 굳혀진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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