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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09. 2021

Since 1956, 감동스러운 국밥 한 그릇

서울 중구 무교동 부민옥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거리 중 하나가 바로 이 식당이 소재한 무교동•다동 골목이다.

한국전쟁 후 사대문 안 중심으로 정치와 경제가 돌아가던 시기 국회의사당은 현재 서울시의회(서울시청 길 건너) 건물이었고, 유수의 언론사와 금융기관이 무교동과 다동을 중심으로 포진해있었으니 경제가 산불처럼 융성하게 들고 일어나던 시기 이 동네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흥가이자 먹자골목이었더랬다.


무교동 노포 먹자 골목

1932년 개업하여 서울식 추어탕을 내는 용금옥 리뷰에서 다뤘듯이 이 동네의 영화는 대단했었는데, 남포면옥과 철철복집, 산불등심, 북어국집 등 수 십 년 된 노포들이 모여 아직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교동 부민옥 전경

이 식당이 개업한 시기는 1953년 휴전한 한국전쟁의 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56년이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이었으니 악착같이 아껴야 했던, 이른바 경제 회복의 염원이 절실했던 시대이다.


난 당연히 상호가 부자(부) 백성(민) 집(옥)을 사용하여 시대적 염원을 반영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메뉴판에서 <부산찜>이라는 음식을 발견하고 이 식당의 기원이 부산 서구에 위치한 <부민동>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메뉴판 좌측 부산찜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메뉴

그도 그럴 것이 음식에 지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지역에서 먹던 방식으로 조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큰 사장님(창업주의 안주인)께서 장사를 시작한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고 한다.


부민옥 양무침과 육개장

부민옥의 무적 메뉴는 양무침과 육개장이다.

소의 위장을 일컫는 <양>은 잡내를 없애고, 내장 특유의 쫄깃함에 부드러운 식감을 더하는 것이 관건이다. 누구나 만들 수는 있되, 맛있게 조리하기는 어려운 부위이다.

이 집의 육개장은 맵칼한 대구식이 아니라 양지를 결대로 찢어내고 대파를 뭉텅뭍텅 잘라 시원하게 끓인 서울식이다.

서울식 추어탕을 논할 때 인근의 용금옥이 빠지지 않듯, 서울식 육개장 이야기가 나오면 첫 번째로 언급되는 식당이 바로 부민옥이다.


푸짐한 양곰탕

오늘 내가 경험한 음식은 양곰탕이다. 숙취를 해결하고자 들렀는데, 뽀얀 국물의 담백함을 즐기고자 양곰탕을 주문하였다.

냉면 그릇 크기에 설렁탕 느낌의 국물이 한가득, 위로는 쫑쫑 썰어낸 대파가 한가득이다. 수저를 넣어 휘휘 돌려보니 건져 올리는 수저마다 양 한두 점이 딸려올 정도로 인심이 후하다.


양이라는 부위를 구이로도, 탕으로도 여러 번 접해봤지만 이 집의 양곰탕처럼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특제 간장에 찍어 우물거리면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부드럽게 식도로 넘어간다.




# 추가잡설

노포의 가치가 재조명받은 지 불과 십여 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02년만 하더라도 식당이 방송 콘텐츠로 활발히 소개되던 시기도 아녔거니와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선 아직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던 것이 터부시 되었던 시대이다.


이제 노포는 추억을 반추하는 노익장들의 전용 공간이 아니라 방송을 보고 찾아온 젊은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대부분의 노포가 <00 옥>이다 보니 그런 상호의 노포를 찾아다니는 2030 젊은이들을 <옥동자>라고 부른단다. 실제 식당에 가옥(옥) 자를 사용하는 것은 일본 문화의 영향이고 1960년 이전 개업한 식당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상호를 지었다.


을지로의 <우래옥 ; 1946년 개업>, 우래옥의 이웃인 설렁탕 식당 <문화옥 ; 1952년>, 다동의 <용금옥 ; 1932년>, 종로구청 앞 <청진옥 ; 1937년>이 바로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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