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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l 18. 2022

300여 년 느티나무 아래 번지없는 주막

경남 함양군 함양읍, 번지없는 주막

함양은 영남의 진산(鎭山)인 지리산을 남쪽에 두고 있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이다. 동쪽으로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수학했던 산청이요, 서쪽으로는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인 남원이 자리하고 있다.

문창후 최치원 선생을 모신 박물관과 상림공원 전경

식도락 측면에서는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데다 지리산을 조망하고 있어 산에서 채집한 나물 요리와 산삼이 유명하고, 역사적으로는 신라시대 문창후로 이름을 날린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상림공원이, 조선시대 가루지기 타령의 주인공인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이 소재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서 전라남도 남원군 인월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초입에는 300여 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그 나무 아래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운영하는 노점 식당이 있다.

함양 어느 고개길 아래 자리한 300여년 느티나무와 번지없는 주막

그 노점 식당의 상호는 <번지없는 주막>으로 실제 예로부터 주막이 자리한 곳은 사람 북적북적한 장터 외에도 큰 고개 아래 길목, 나루터 등이었다. 물자 뿐 아니라 정보 역시 사람에 의해 길에서 길로 흘러 다니기 마련인데 큰 고개 아래 길목과 나루터에 자리한 주막은 길손에게 술과 음식, 휴식처를 제공하는 곳이자 여러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여행객들의 정보 교류처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함양 지안재 구불길

주막을 수호하듯 자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 삼봉산이다. 삼봉산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리면 지리산 둘레길이요, 이 길을 지나 마주치는 고개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지안재 구불길이다. 지안재 구불길을 넘어서면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이 있는 오도재를 만날 수 있다.

주문한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석쇠불고기

주막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이 화려한 음식으로 미식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길손의 끼니를 가볍게 때우기 위한 음식이 제공되는 장소이니 이 번지없는 주막의 메뉴 역시 국수와 모둠전, 석쇠불고기로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다.

멸치곰국에 말아낸 물국수 (잔치국수)

메뉴에는 잔치국수라 적혀 있지만 정작 주모 할머니께서 <물국수>라 하시는 것을 보니 경남 김해와 양산 등지에서 멸치곰국 우리듯 멸치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씁쓰레하게 우려내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방식으로 육수를 내신다. 멸치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우려내는 방식은 상품의 멸치를 사용해야 가능한데 비린내와 잡내 없이 국물이 아주 깔끔하다.

맛깔난 양념의 새콤한 비빔국수

비빔국수의 양념장은 달콤보다는 새콤에 가깝다. 밭에서 막 따 오신 듯한 여린 상추잎에 석쇠불고기와 비빔국수 한 젓가락, 마늘 한편 싸서 입에 넣으며 나지막이 불아오는 봄바람을 맞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주인장 할아버지가 숯불로 구워주신 석쇠 양념. 불고기

국수야 아무리 맛있어도 엄청나게 대단한 맛일 수는 없는데 의외로 아궁이 장작으로 때고 나온 숯으로 구워낸 석쇠 양념 불고기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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