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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Dec 21. 2021

동짓날엔 팥죽 그리고 신당동 이야기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천팥죽

한민족 우주관의 원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음양오행>이다. 음양오행 이론에 따르면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이자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는 음기가 가장 강한 날로 민간에선 귀신이 지상으로 내려온다고 믿었었다. 동짓날 잡귀를 쫒아내는 벽사의 기운이 담긴 음식이 바로 붉은 색 <팥>이다.

붉은 색을 띠어 양을 상징하여 음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알려진 소적두(팥)

2021년의 동짓날인 12월 22일은 음력 11월 19일로 <중동지 ; 동지가 음력 11월 중순인 11~20일 사이 자리>에 들어간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먹지만 동지가 11월 초순(1~10일)인 애동지에는 아이 귀신을 쫒는 팥죽을 먹으면 집안의 아이에게 탈이 난다고 여겨 팥죽 대신 시루팥떡을 먹곤 했다.

축융의 아들, 공공의 상상도

동짓날 팥을 이용하여 축귀를 하는 것은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지방의 풍속을 담은 <형초세시기>의 공공씨 설화에서 유래했다. 불의 신인 축융의 아들인 공공씨에게는 성질 고약한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게 되어 역귀(전염병을 옮기는 귀신)가 되었다. 역귀는 생전 붉은 팥죽을 무서워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집 안 곳곳에 팥죽을 쑤어 뿌리니 과연 축귀의 효험이 있었다는 설화가 바로 <동지팥죽>의 유래이다.

음기가 가장 강한 절기인 동지와 벽사의 기운을 가진 팥죽이라는 신묘한 조합은 서울 중구 신당동 소재 천팥죽과 궁합이 썩 잘 어울린다. 이 식당은 신당역 4번 출구 왼쪽 골목 10여m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데, 이 골목엔 서낭기를 매단 점집이 무성하게 자리잡고 있다.

시체를 내가는 문이란 뜻으로 시구문으로 불렸던 광희문(좌)와 신당 점집 골목의 서낭기(우)

조선시대 도성 안에는 묘를 쓸 수 없어 광희문으로 상여를 내었는데, 망자를 좋은 자리에 모시기 위해 점을 치던 <신당>이 모여있던 동네가 바로 지금의 중구 <신당동>이다.
신을 모시던 당집이 밀집한 동네이니 당연히 <음기>가 강할터 동짓날 팥죽 한그릇 먹기에 이보다 좋은 위치는 없다고 본다.

여름철에는 콩국수를 한다지만 상시 메뉴는 팥칼국수와 새알 팥죽 2가지가 전부이다. 허름한 동네 뒷골목 식당이라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꽤 난 곳이다보니 바로 옆 작은 별관도 갖추고 있다.

작고하신 식당 창업주의 자필로 씌여진 명함과 차림표

특이한 것이 메뉴판도, 명함도 정갈한 붓글씨가 눈에 들어와 카운터에 여쭤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것이라 한다. 상호도 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것이라던데 아마 찾아온 손님의 건강과 행복이, 그리고 가게에는 좋은 복이 샘처럼 솟아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샘(천)을 식당 이름에 담아내신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신당동천팥죽의 새알 가득한 팥죽과 동치미 한상

팥죽집 중 가장 인지도 있는 <서울에서 둘째로 잘 하는 집>은 계피향의 존재감이 팥 본연의 향과 맛을 덮은 세련된 화장을 한 도시 처녀라면 <신당 천팥죽>은 팥 자체의 진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화장 안 한 건강하고 풋풋한 시골 처녀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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