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익산시 평동로11길 60 「신동양」
음식은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나 역시 여행을 다니는 목적 중 하나가 지역색이 담긴 음식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식 뿐 아니라 이 땅에 자리한 중식 역시 사자표 춘장으로 획일화된 짜장면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독특한 낙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여행 기간 내 한 끼니는 꼭 '중식 노포'를 찾아가곤 한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면서 만만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짜장면이다. 얼마 전 넷플리스에서 방영한 「짜장면 랩소디」 1편의 주제는 '짜장면 먹는 날'로 프리젠터로 나선 백종원 님은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 정의한다.
1980년을 전후하여 태어난 중년 세대에게 있어 유년 시절 짜장면은 졸업과 입학 등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이벤트 음식이었고, 어른이 되고 나선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었을 테니 돌이켜보면 지나온 시절 굽이굽이 행복하고 좋은 순간 함께한 음식이다.
2021년 기준 전국 2만 9천 개의 짜장면 집, 하루를 기준으로 600만 그릇이 소비된다는 짜장면은 이제 명실상부 K 푸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짜장면에 대해 그만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반 대중의 평균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소스를 부어주면 짜장면, 볶아주면 간짜장, 여기에 해물을 넣고 볶으면 삼선짜장 이 정도가 다가 아닐까?
그러나 짜장면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심오하고 복잡하다.
우선 짜장면의 역사는 곧 이 땅에 정착한 화교의 삶과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짜장면의 역사는 인천항이 개항했던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항과 더불어 청나라와 미국, 독일, 일본 사람이 한반도로 들어왔고 중국인이 사는 거리에 문을 연 공화춘은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다.
인천의 「짜장면 박물관」에서조차 짜장면은 가난한 부두 노동자를 위한 음식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실상 국내 최초의 짜장면은 중국 산동 지역에서 먹는 면에 첨면장을 ‘얹어먹는’ 형태로 지금처럼 소스에 면을 ‘말아먹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데다 밀가루 국수가 흔했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당시 짜장면은 청요릿집을 찾는 부유한 이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짜장면이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으로 한국화 된 건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했던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가 단절되며 첨면장이 중국 본토에서 들어오기 어려워진 데다, 1948년 첨면장에 캐러멜을 첨가해 개발한 춘장이 보급화되면서부터이다.
여기에 1960년대 화교를 겨냥한 한국 정부의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과 「화폐 개혁」등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인을 위한 중국집'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으로 대거 전환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짜장면의 종류 역시 대폭 간소화되었지만 채소와 고기를 잘게 갈아 넣은 유니짜장, 재료를 길쭉하게 채 썰어 조리한 유슬짜장, 춘장 대신 두반장과 고추를 사용해 맵게 볶아낸 사천짜장 등 그 종류 역시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런데 전라북도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물짜장」은 중식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조차 생소한 음식이다. 애초 짜장면에 대해 대중은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맛볼 수 있는 획일화된 음식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데, 오직 「전라북도」에서만이라는 지역적 제한이 있는 데다 짜장면의 필수 재료인 「춘장」도 사용하질 않으니 이를 과연 「짜장면」이라 불러도 되는지조차 애매하다.
전주와 완주, 군산을 둘러보는 가족 여행에서 이 귀한 물짜장을 경험해 보고자 일부러 익산에 들러 1979년 개업했다는 「신동양」이라는 노포 중식당에 방문하였다. 지방 노포 중식당을 방문하면 간혹 대중의 수요와 시대의 편리성을 도외시하고 꿋꿋하게 그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 업장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집 역시 그러하다.
메뉴판을 보니 짜장면의 종류만 해도 삼선물짜장 · 삼선간짜장 · 사천짜장 · 간짜장 · 짜장면 등 무려 5종이다. 박찬일 셰프의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이라는 책의 띠지에는 새벽같이 나오고, 아파도 쉬지 않고, 그저 묵묵히 매일매일 같은 맛을 지키는 "이 비효율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새삼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과거 군산에서 만났던 물짜장은 분명 붉은 빛을 띤 소스로 기억하는데, 익산의 물짜장은 소스가 거무스름하다. 나무위키에서는 물짜장을 간장과 녹말물을 사용해 만든 울면과 비슷한 음식이라 기술해 놨지만, 내가 알기로 물짜장의 시작은 맛의 고장인 익산과 군산 일대의 화상의 '비효율적인 고집'에서 비롯되었다.
앞서 1948년 사자표 춘장의 출현에 대해 언급했지만, 당시만 해도 물류 여건이 좋지 않았을 시대이니 용산구 문배동 용화장유(사자표 춘장을 생산하는 영화식품의 전신) 공장의 춘장은 수도권 위주로 보급되며 아무래도 지방의 화교 중식당은 그 사용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공장제 춘장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달달한 맛에 먹음직스러운 검은색까지 갖추었으나, 콩 대신 밀가루를 사용하며 고유의 맛을 잃었으니 지방의 화교 중식당은 오히려 그 사용을 거부했더랬다.
그 과정 중 전주와 군산, 익산 일대에 한해 나온 음식이 바로 첨면장에 물기를 더한 이 지역만의 독특한 음식인 「물짜장」이다. 죽순과 톳, 주꾸미와 오징어 등 다양한 재료와 한 그릇 가득 내어주는 푸짐한 양 역시 호남의 인심, 그 자체이다. 면은 첨가제의 사용을 최소화하였는지 식감이 부드러워 식후에도 속이 편안하다.
호남의 볶음밥은 십중팔구 오므라이스처럼 계란이 덮여 나온다. 서울에서도 간혹 전라도가 고향인 주방장이 있는 식당에선 그리 먹었었는데 서울에선 경양식 오므라이스 지단 두께로 얇게 부쳐낸 반면 이 집의 지단은 계란물에 야채를 넣어 두터운 빈대떡처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요리에 들어간 정성이 다르다. 옛날 볶음밥 그 방식 그대로 돼지고기는 튀기듯 볶아내었고, 밥은 마지막 단계에서 웤에 제대로 눌러 수분기를 날려주며 고슬함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