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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Aug 23. 2024

봉화의 단종과 이몽룡 그리고 송이버섯 이야기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다덕로 526-4 「용두식당」

경북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봉화는 백두대간을 끼고 있어 수려한 산세를 조망하여 한유로운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고장이지만, 요란스러운 볼거리는 실상 많지 않은 곳이다. 화려한 볼거리는 부족할지언정 조상 대대로 한 자리에 살아온 차분한 시골 마을 일상이나 깊은 산속 역사가 장구한 사찰이 뿜어내는 담담한 풍경은 봉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와 호랑이를 민날 수 있는 백두대간수목원

또한 신라 문무왕 시절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와 아시아 최대 규모 수목원이자 멸종 위기종인 백두산 호랑이를 관람할 수 있는 「백두대간 수목원」이 봉화의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으며, 역사 인물에 대한 설화, 지명 유래담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은 고장이기도 하다.


백마를 탄 단종과 이를 기리는 고치령 산신제 모습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태백산에는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전설이 내려온다.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영월 땅으로 유배된 단종에 대해 이곳 주민들은 연민의 정이 컸었더랬다. 세조 3년 가을,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영월 관아에 볼일이 있어 가던 터에 흰 말을 타고 오는 단종을 만나 엎드려 절하고 행선지를 여쭈니 태백산에 놀러 간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영월에 도착한 마을 사람들은 그날 낮에 이미 단종이 시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에 입산한 것으로 믿게 되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이 어린 도계서원과 금성대군 등을 모신 사당

단종을 애닮게 여기는 봉화 주민들의 정서 때문인지 실제 봉화읍에는 단종의 복위 운동을 시도했다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금성대군 이유, 순흥부사 이보흠, 단종이 폐위되자 낙향하여 3년상을 지낸 봉화 출신 문신 이수형 등을 추모하는 도계서원(道溪書院)이 소재하고 있다.



봉화가 품은 또 다른 인물은 흥미롭게도 춘향전의 「이몽룡」이다.

연세대학교 설성경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몽룡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 1595∼1664)으로 조선조 광해군 · 인조 때의 실존 인물이다. 

한반도 최초이자 최고의 로맨스 소설, 춘향전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였는데, 당시 이 지역의 탐관오리를 처단한 내용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과 다름이 없다. 실제 성이성이 암행어사 시절 지은 '술독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소반 위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는 한시의 구절은  춘향전에 나오는 대목과 일치한다.


이몽룡의 모티브가 된 성이성이 거주했던 계서당 전경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지만, 대대로 내려온 지역의 향토음식은 지역의 정서를 닮기 마련이다. 실제 봉화의 특산품인 송이버섯은 입 안을 감도는 감칠맛은 없으나, 향이 뛰어나 「여운이 많이 남는」 식재료이다.



봉화는 면적의 약 80%가 산지이고, 백두대간을 따라 우거진 금강송의 고장으로 산이 높아 가뭄에도 계곡에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다. 해발 400여 미터 이상 고산지 마사토 토양에서 1 급수의 시원한 계곡물을 먹고 자란 봉화의 송이버섯은 다른 지역보다 단단하고 향이 뛰어나 세계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봉화군 특산품인 송이버섯 요리 전문점, 용두식당

봉화읍에서 정감록 십승지 중 한 곳인 닭실마을을 지나 찾아간 곳이 1992년 개업하여 지역민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용두식당」이란 곳이다. 인구 3만의 벽촌마을이라고는 하나 낭중지추인지 식당 벽면에는 과거 방송가를 주름잡았던 SBS 결정 맛대맛, 1박 2일, VJ 특공대 등 맛집 프로그램 이력이 가득하다.

특히나 SBS 결정 맛대맛은 2000년대 초반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류시원 배우와 강수정 아나운서가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이 포맷을 후에 '백종원의 삼대천왕'이 이어받게 된다.



송이차와 송이전

주문한 음식은 송이솥밥, 능이솥밥 그리고 봉화가 아니고선 도저히 경험할 수 없음직한 송이전이다. 고소하게 부쳐낸 부침개에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올렸는데 대한민국에, 아니 지구상에서 이리 비싼 송이로 호사를 누리다니 황송하기까지 하다.


예로부터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라 했으니 능이솥밥과 송이솥밥을 함께 주문하여 아내와 함께 반씩 나눠 먹었다. 솥밥 뜸 들이는 단계에서 송이를 올렸는지 솥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과 함께 송이향이 확 퍼져 나온다.


송이솥밥과 정갈하게 차려낸 밥상

우선 송이를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본연의 맛을 경험하니 먼 길을 돌아 봉화에 다다른 노고가 한 번에 날아간다. 솥밥의 반 그릇은 송이향을 머금은 밥의 담미를 즐기고, 나머지 반 그릇은 무려 14 찬이나 내준 나물 반찬을 고루 넣고 비벼 먹으니 맛있다는 느낌을 넘어 그 감정이 행복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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