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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Oct 25. 2024

Since 1910, 대한제국 시절 개업한 안성 영흥루

경기도 안성시 중앙로 412번길 26 「영흥루」

우리네 관념상 '백 년'은 1년이 백번 모인 시간의 축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 백년가약과 백년해로라는 단어의 백 년에는 '부부의 평생'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이 땅에 외식산업이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인 데다 사회가 정치 · 경제적으로 계속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업력 30년을 기준으로 노포를 기준한다.  


이웃나라 일본이 1천 년 이상 역사를 가진 기업이 무려 7개에 이르고, 100여 년 이상 업력으로만 따져도 무려 33천 개에 이르는 것에 반해 우리는 2010년 이후에나 「노포」라는 단어가 다시 발굴되어 널리 사용될 뿐 실상 개인사업자나 소상공인에 대한 공식 조사나 통계는 전무한 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식당의 업력은 정확한 사료에 근거한다기보다 '주인장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성 영흥루의 내외관

「생활의 달인」에 덴뿌라와 간짜장 맛집으로 소개되며 미식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안성의 《영흥루》는 무려 1910년 개업했다고 알려져 있다. 1910년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114년 전이고, 무려 대한제국 순종 4년으로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가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겼던 해이다.


내가 알기로 2024년 기준 100년의 역사를 가진 노포를 꼽으라면 언뜻 생각나는 곳이 한식으로는 종로의 이문설농탕(1904년 개업), 진주 천황식당(1915년), 하남 마방집(1918년) 등이 있고, 중식으로는 남원의 경방루(1909년), 인천의 중화루(1918년) 등이 있을 뿐이다.


옛날 영흥루의 간판과 최근 복원한 영흥루의 현판 (청풍만회)


실제 안성 《영흥루》의 역사가 1910년 시작했는지는 검증할 수 없었으나, 아주 먼 옛날 선대가 남겼다는 「淸風滿懷」(청풍만회 ; 맑은 바람을 가득 품다)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최소 수십여 년은 족히 넘었겠다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가문과 혈통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의 특성상 식당의 연원을 '이 땅에서 개업한 시기'부터 셈하지 않고, '조상께서 한반도로 넘어오기 전 중국에서 요리를 시작하셨던' 시점부터 셈하는 사례가 노포 중식당에서 왕왕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영흥루가 개업했다는 1910년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제주의 노포 중식당, 「송림반점」의 메뉴판과 서울 광장동 화상 노포 「장순루」의 내부


중식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은 '관찰'을 통해 식당의 역사를 추론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나름 근거가 있다. 이를테면 경제개발 부흥기 당시 중식당이 배달 속도 경쟁을 하며 사라져 버린 음식들이 있는데 탕수육으로 수요 추가 기울며 사라진 「덴푸라」, 유산슬의 상위버전인 「잡탕」과 「해삼탕」, 짬뽕에게 먹혀버린 「기스면」과 「우동」 등이 메뉴판에 존재한다면 최소 30여 년 이상의 업력을 가늠해 본다거나 매장의 인테리어가 중국에서 행운과 복의 상징인 붉은색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면 화상이 운영하는 식당이라 짐작하는 것이 바로 그런 사례이다.


영흥루 역시 최근 인테리어를 하며 단정하면서 깔끔하게 내관을 정리했지만, 식도를 갖고 이 땅에 들어온 화교들이 앞으로의 각오와 다짐을 담아 걸어놓은 현판이 있고, 초창기 화교는 대부분 산둥반도에서 넘어왔으니 이를 근거로 산둥반도 출신 화상 식당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권좌에 앉을 수 있게 한 이 집의 덴푸라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중식당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다. 대부분 새콤달콤한 탕수육 소스를 붓지 않은 고기 튀김이 덴푸라 아닌가 생각할 테지만, 조리법에 있어 고기의 밑간과 반죽 방식, 튀김 등 여러 차이가 있는 음식이다.


영흥루의 간짜장과 옛날 볶음밥


홀로 방문한 것이기에 아쉽게도 정작 주문한 것은 간짜장과 볶음밥이다.

작년 「생활의 달인」에 소개되기 전까지 어떤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장사하던 곳인데, 주인장의 그러한 성격이 음식에 고스란히 반영된 건지 단정하지만, 특색은 확실하게 조리되어 나온다.


조미료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양파의 단맛으로 볶아낸 간짜장과 밀가루와 소금, 물 외에는 반죽에 넣지 않았다는 면,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주는 온도감 등 딱 한입만으로도 슬며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볶음밥 역시 옛날 방식이다. 파기름을 충분히 내고 돼지고기와 함께 볶아낸 밥을 짜장 소스를 얹어 한 술 입에 넣는 순간 불현듯 국민학생 시절 아버지 손 잡고 다녔던 허름한 중국집이 떠오르는 걸 보니 굳이 이 먼 거리를 잘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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