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시 신기3길 11-2 「동성반점」
문경은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70~1980년대 경북선이 점촌역을 지나고, 탄전지대에 문경선과 가은선의 두 개 철도 노선이 있을 정도로 석탄과 철도의 황금시대를 누린 곳이다. 작은 문경 지역에 8개의 기차역이 있을 정도로 철도 교통이 발달했고, 사람보다 무연탄이나 탄광 자재 등 화물열차가 더 많이 다녔더랬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시는 1985년 신축 주택의 ‘석탄 사용 금지’를 발표했다. 석탄이 도시 환경을 저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탄광들의 구조 조정도 이때부터 본격화되었고, 문경의 영화 역시 이 즈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문경의 새로운 비상은 2000년대 중반경 수도권과 접근성이 우수하고, 산세가 수려한 명산이 주변에 많다 보니 이를 중심으로 사극 세트장이 곳곳에 만들어지며 '영상문화복합도시'를 표방하기 시작하면서 이뤄졌다. 육룡이 나르샤, 해를 품은 달, 철인왕후, 남한산성, 킹덤, 관상, 슈룹, 고려 거란 전쟁 등 사극 마니아들의 큰 사랑을 받은 이들 작품의 촬영 역시 문경에서 진행되었다.
문경시의 중심인 문경읍에서 문경새재 방면으로 올라가다 보면 '신기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한국전쟁 후 전후 복구와 한국 경제 재건을 위해 「국제연합 한국재건단」이 이 동네에 1957년 시멘트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충주 비료 공장과 더불어 대한양회 시멘트 공장은 우리나라 근대 산업화 기지의 상징으로 196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전국에서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이 끊이질 않았더랬다.
새마을사업 등 건설 경기가 한창이었을 때는 문경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1천여 명에 달했고, 삼척 동양시멘트공장(現 삼표시멘트)과 더불어 국내 수요의 절반을 담당했다고 하니 이 지역의 영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역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동성반점(同盛飯店)은 대한양회 시멘트 공장이 설립되었던 시기 즈음해서 개업했다고 한다. (대한양회는 1975년 쌍용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쌍용양회가 흡수 합병)
이제는 농어촌 시골 마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재래식 좌변기가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고, 독립된 방에는 여전히 좌식 탁자가, 홀에는 빛바랜 옛날 옥색 식탁이 자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건물 건축 시기를 1980년대로 추정할 뿐 가게의 역사는 그 이전부터 셈해야 할 것이다. 가게의 오랜 업력은 음식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추억의 탕수육」은 결국 추억하는 이가 어느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내가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유년 시절의 탕수육은 1980년대 초반 청요리집의 고급 요리였더랬다.
탕수육과 짜장면이 속도전으로 진행되었던 「산업화 시대의 전투식량」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탕수육은 달고 시고 극단적인 맛의 소스와 바삭함을 강조하다 못해 딱딱하게 튀겨내어 아예 육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기 튀김 등 1차원적인 맛을 내는 그저 그런 요리로 하향 평준화되었다.
내가 추억하는 그 시절 탕수육은 바삭한 튀김옷 안에 존재감 뚜렷한 고기, 자극적이지 않고 다소 밋밋하게 보이는 하얀색 소스로 이루어진 데다 접시 한 켠에는 주방장의 칼솜씨를 자랑하듯 당근과 무 등으로 카빙한 장식품이 놓여있었더랬다.
이 집 탕수육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또 다른 흔적은 소스에 들어간 「배추」이다. 지금 우리가 김장 배추로 사용하는 것은 한반도 토종 배추가 아니라 화교가 갖고 들어온 「호배추」이다. 한반도 토종인 개성배추에 비해 3배가량 알이 실하고 단 맛이 좋아 청요리에 널리 사용된 식재료이다.
그래서 노포 화상 식당에 가면 탕수육이나 난자완스에 사선으로 손질된 배추를 왕왕 볼 수 있는데, 이 집에서도 그 흔적이 엿보인다.
간짜장은 시중의 여타 중국집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다. 단맛이 배제되었고 고소한 춘장의 풍미가 가득한 '딱 떨어지는' 맛이다.
문경 역시 경상북도에 속한 지역인지라 메뉴판에 '야끼우동'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주문해 봤다. 한국식 야끼우동은 대구 동성로 중국집에서 태어나 전국으로 퍼지며 지금은 '볶음짬뽕'이란 이름으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잘게 다져낸 야채와 칵테일 새우를 볶아낸 이 집의 야끼우동은 맵칼한 대구식과는 또 다른 맛을 내는데 근사한 경양식당의 짬뽕 파스타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