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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18. 2024

Since 1990, 짜장면에 대한 우리의 편견

대전광역시 서구 사마6길 35 「홍운장」

대중들이 부담 없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나, 가장 평가절하된 음식이 바로 짜장면이다.


우리네 전통 한식은 김치와 된장, 간장 등 시간이 켜켜이 쌓아 올린 발효 소스를 사용해 조화로운 맛의 균형을 이뤄낸 고유의 식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기와 나물 반찬의 균형 잡힌 식단이 그러하고, 뜨거운 국물 요리와 차가운 무침 요리의 궁합이 그러하다.


G20. 정상 회담 당시 준비되었던 그랜드 워커힐의 12첩 상차림

그리하여 격식을 갖춘 반상을 받아보면 쟁첩(반찬을 담은 접시)의 수에 따라 3첩에서 홀수로 12첩에 이르기까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식사 예법에 따라 격식을 갖춰 차려진다.

(작가 주 : 3첩과 5첩은 일반 백성의 밥상이요, 7첩과 9첩은 반가에서 주로 먹던 상차림이었고, 12첩 이상은 수라상이라 하여 임금이 먹던 상차림이다)


이에 반해 우리가 중식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은 '공장제 춘장으로 순식간에 만들어낸 패스트푸드',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는 정크 푸드', '단무지와 양파 등 반찬이랄 것도 없는 단출한 차림의 끼니 때우기용 음식'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반은 추억의 맛'이라 굳게 믿고 있는 나의 「중식기행」은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사주신 바삭한 탕수육과 양손으로 비벼내 입에 욱여넣었던 짜장면과의 조우에서 느낀 황홀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자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중식에 대한 편견을 풀어내가는 과정이다.


대전 서구 도마동은  여전히 아파트보다는 빌라와 단독 주택이 많은 한갓진 동네이다. 이 동네에 어쩌면 '대전에서 가장 훌륭한 중식당'일지 모르는 노포가 있다 하여 불원천리 하고 달려갔는데, 짜장에 대한 편견 한 꺼풀이 또 벗겨졌다.


배재시장 골목 안에 자리한 <홍운장>은 화교 2세대 장홍길 사부가 운영하는 대략 35년 된 노포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대로 돌아간 듯 식당 중앙에 엽차를 끓이는 용도로 사용했을 난로가 손님을 반겨준다.


당연하게도 짜장면은 '짜장 소스와 밀가루 면'의 조합이다.

짜장의 주된 재료인 춘장은 다들 중찬명가 사자표를 사용하니 차제 하더라도 재료의 크기와 볶음의 정도, 조미료의 사용량과 소스의 점성에 따라 다른 맛을 내긴 하니 우리가 짜장면이라는 음식을 품평할 때 짜장면이라는 큰 산보다는 「짜장소스」라는 나무에 집중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집의 간짜장과 함께 나온 「면」은 그 존재감이 너무나도 확실하다. 노사부께서 직접 밀가루 반죽을 치대 뽑아낸 면인데, 일반 중식당의 그것보다는 다소 얇은 느낌으로 탱글함과 부들함의 밸런스를 완벽하게 잡았다.


간짜장은 조미료의 단 맛을 배제하고 춘장 자체가 갖고 있는 구수함에 불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데 놀랐던 점은 짜장 소스와 면의 이중창이 너무나도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 화려한 이중창의 배경에서 은은히 화음을 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향긋한 오이채이다. 소스와 면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좋은 데다 그 가교 역할을 해주는 오이채의 역할이 분명하니 마치 금슬 좋은 부부와 아이로 이루어진 행복한 가족을 보는 듯하다.


탕수육도 발군이다. 개인적으로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데 이 집은 바삭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에 더 가깝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선호를 뒤집을 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바로 80년대 초중반까지 대세를 이뤘던 투명한 소스이다. 소스의 새콤달콤한 맛이 강하지 않고, 고기 튀김 본연의 식감과 맛이 도드라지는 데다 아직도 덩어리 고기를 사 와서 직접 손질해 하나하나 일일이 튀김옷을 묻혀서 튀겨내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업장을 나서며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겐 짜장면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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