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게
아저씨가 언제부터 함께 했던 것인지, 상황이나 사건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은 다분히 거짓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첫 만남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 있었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떴을 때, 운전자와 그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손을 잡고 있었다.
“조심해, 얘 눈치 되게 빠르거든”
엄마의 말소리였다. 아니, 나는 잤던 게 아니라,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쩐지 눈을 뜨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가 아저씨를 ‘친구’라고 소개했으니까, 그래, 그 사람은 그냥 엄마의 친구 중 한 명 일 것이다.
엄마는 친구가 많았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를 마칠 시간 즈음에 엄마는 집에 친구들과 있거나 혹은 친구의 집에 가서 화투를 쳤다. 사교활동이야,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을 사귀는 거야, 쩜백이라니까. 라고 말했었는데 그 ‘쩜백’이 고스톱 1점 당 ‘백 원’으로 계산하는 화투라는 것은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디 가서 잃지는 말아야지, 놀 줄은 알아야지” 하면서 엄마가 내게 고스톱의 규칙을 알려준 덕분이다.
조금 더 자랐을 때, 부모님은 나와 여동생의 교육문제를 걱정하며 도시로 이사를 감행했다. 애들이 촌년으로 자라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발동했다고 한다. 원래 친구가 많았던 엄마는 그 때부터 인기가 더 많아졌던 것 같다. 엄마는 종종, 밤에 외출을 했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흔들고 오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었다. 아빠에게 말하기를, 당연히 그 곳에서는 ‘남자들’이 접근하지만 그렇게 추근거리는 놈 치고 멀쩡한 놈이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뿌리친다고 했다. 가끔은 막내이모나 앞집 아줌마와도 함께 나이트라는 곳을 갔고, 그런 날이면 나는 우리집에 사촌동생과 앞집 동생을 데리고 와서 학교놀이를 하곤 했었다.
아저씨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던 때는, 여동생이 없었으니 내가 고3쯤 이었을 것이다. 아저씨는 엄마의 친구이기도 했고, 같이 고스톱을 치는 멤버라고도 했다. 나는 아저씨과 엄마가 손은 잡은 것을 봤지만, 안 본 것이기도 했다. 그 다음 기억나는 것은 아저씨, 엄마, 나,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큰 솥에 쪄낸 엄청나게 많은 양의 대게를 먹고 있는 장면이다. 평소 입이 짧고 비위도 약해 한번에 많이 먹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대게가 목구멍까지 차 있는데도 먹고, 또 먹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게살을 발라 우리 셋의 그릇에 놓아주기 바빴다. 아저씨와 나와 여동생은 끝없이 먹고, 또 먹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엄마는 게딱지에 밥을 비벼 신김치까지 얹어서 우리를 먹였다. 귀한 음식이고 이렇게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고, 여러 번 강조를 했다.
그렇게나 먹었는데 대게는 남았다. 게를 싸왔고, 그날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온 아빠의 저녁식사가 되었다. 그 날 나는 무척 슬프고 억울했으며 내가 목구멍 까지 밀어 넣었는데도 다 없어지지 않은 대게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다음날도 나는 너무나 슬펐고, 아빠가 출근하고 난 후 엄마에게
“아빠가 그 게를 드실때 죄책감이 느껴졌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놀랍게도 엄마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