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세월호 4주기를 맞아
뭐라도 써야겠다, 습관적으로 써보자, 라고 생각만 하는 시기들이 벌써 몇년 째 지나가고 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조차도 들을 수가 없었고, 직면하기 힘든 장면이 떠오르면 때로는 작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로는 욕을 지껄이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이 치유가 될 것이라고 믿고, 시작해 보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막막했고, 컴퓨터 자판 앞에서 시간을 만들어 내는 일 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뜸을 들였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 후, 4주년이다. 전 국민의 트라우마, 그 참혹한 순간에, 현실인지 아닌지 어안이 벙벙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감정적 차원의 대응 정도? 였다. 그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름의 애도를 하고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 혹은, 어떤 사건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다만 '슬픈 일',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일' 정도라고 여겼다.
어이없게도 그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부산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세월호, 세월호, 하는 것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 어렵다." 라고 말했던 것. 그 황당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 엄마도 부모인데 그 사람들의 심정은 생각하지 않냐' 라고 질책하듯 이야기 했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인 프레임만 씌우는 것, 아아, 그게 당시 나와 나의 가족의 일상적인 대화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고. 억지로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 그 상황에 점차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것이, 많은 관계와, 나의 자존감이 무너졌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도 그 당시를 직면하기 어렵고, 인정하기 어렵고, 떠올리기 조차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쓰고자 했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모르겠어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했었다. 어쩌면 영어로 써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좀 더 객관적으로 그들을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 아니 더 깊이는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바라 볼 용기가 아직도 여전히 나에게는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찌보면 원망과 좌절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고 그 대상이 너무도 적절하게, 특히 엄마와 얽혀 있었다. 원인일 수도, 혹은 현상일 수도 있는 관계, 그리고 대상.
나는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글로써 직면할 수 있을까. 그 때로 돌아가서 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안의 상처가 별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나를 다독일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무엇이 더 나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