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의미한 시골라이프

소소한 이야기

by 하나

손님을 맞으려면 최소한 몇 개의 접시가 필요할까. 집에 있는 접시와 볼 중에서 꺼내놓을만 한 놈으로 세어보면. 메뉴는 4가지 정도면 가능할까. 식탁 의자가 부족하니 바닥 테이블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테이블 매트도 있어야 하나.


시작은 가벼웠다. 지난 번 우리 커플에게 식사 대접을 해 준 B선생님 내외, 아, 그리고 그 집의 예비 고3도 같이 있었구나. 한우로 대접을 받았기에 보답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다. 최근에 그 댁에서 일본을 다녀와서 좋은 술을 구했다고 하셨단다. 우리 커플을 초대하는 말인가? 싶어서 "그래, 같이 저녁 해." 라고 응답한 것이었는데 그 댁에서는 당, 연, 히. 우리 집에서 저녁식사로 알고 계신다나.


그리하여 하릴없이 지나갈 뻔했던 주말이 조금 분주해지고 있었다. 초대는 토요일 저녁이지만, 금요일 저녁, 우리는 근처 큰 마트에 들렀다. 평소 결정장애에 가까운 우리의 성격은 장보는 시간을 길게, 품목은 최소한으로 담아오곤 했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우리 둘만 있었던 때에 비하면 마트를 털었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 큰 카트가 작아보이는 몇번 안되는 경험. 게다가 이번 주말에는 큰 아이가 시험기간이라 집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여 먹을거리와 몇 가지 짐을 챙겨다 주려던 참이었다. 그리하여 쇼핑의 기준은 손쉬운 요리, 혹은 주말맞이 세일행사를 하는 제품. 고민을 줄이고 거침없이 카트로 골 인, 골 인.


토요일 오전, 주섬주섬 장바구니를 챙겨드는 나를 보니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

- 어디가?

- 아, 요 앞 마트.

- 또 마트?

- 어제 야채는 안샀잖아.


인근이 온통 농사짓는 마을이다. 농산물 직거래 마트에서 야채를 사면 서비스로 흙이 따라온다. 싱싱함은 기본. 토마토, 쌈야채 등등을 담아오려고 마트를 들어갔다. 직장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로 들렀던 곳인데, 그러고보니 오전에 방문한 게 처음. 생경한 장면을 만났다. 개량한복을 입은, 머리가 하얗게 센, 앙다문 입술이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노인 한 분이 계산대 옆에서 무엇인가를 조심스레 천천히 닦고 계셨다.

- 이게, 뭐에요?

계산대의 친절한 (나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아줌마가 대신 설명하신다.

- 오골계가 오늘 아침에 낳은 유정란 이에요.

- 아, 유정란!

그것은 일반 계란보다 작았을 뿐 아니라 희거나 스킨색도 아닌 연한 푸른 혹은 검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그러면, 일반 계란처럼 먹나요?

다소 바보스러운 질문이었을까, 노인의 앙다문 입술이 씰룩였다. 또 한번 계산대의 친절한 아줌마가 답을 해 주신다.

- 아, 그럼요. 생으로 먹기도 해요.

- 생으로요? 하하. 생으로 잘 먹어보질 않아서...

결국 참다못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 생으로, 노른 자를 입안에서 굴리면, 고소한 맛이 나요.

그 말을 남기고 6개의 밝고 검푸른 유정란을 조그만 바구니안에 조심히 옮겨담기를 마친 그 노인은, 내가 그 계란을 사든말든 전혀 관심이 없다는 무심함을 보여주듯이 가게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결국, 계획에 없던 유정란 2개를 데려오기로 했다. 담아갈 곳이 마땅치 않아보인다고 계산대의 아줌마는 종이컵을 꺼내주셨고, 조심히 옮겨담는 순간 살짝, 놀랐다. 그녀석들에게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였다. 아니, 진짜 온기였을까? 오늘아침 겨우, 세상으로 나온 그것이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품고 있었던 그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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