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자격

by 은재

평소엔 그 누구에게보다 스스로에게 관대하면서, 기이할 정도로 엄격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의 감정에 대해 생각할 때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심해진건 10년 내에 일어난 일 같다. 어느 순간부터 힘들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타인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번아웃이라는 말이 유행 아닌 유행을 타면서 여기저기서 많이 보일 때, 나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서 '혹시...'라는 운을 띄우자마자 나는 아주 냉정하게 말하곤 했다.


웃기고 있네. 넌 번아웃이 올 자격이 없어. 니가 무슨 번아웃이야. 핑계대지 마.


뭐, 좋게 해석하자면 나태해질 핑계를 찾는 내게 일침을 놓아 정신 차리고 일하게 하려는 말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번아웃에 무슨 자격이 있어? 하면서 괜히 서글프고 서운해지는 말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조금이라도 자기연민을 하려고 하면 득달같이 자격을 운운하며 스스로를 다그치지기에 바빴다. 사실 그랬다. 나처럼 편안한 백성이 어딨다고. 복에 겨워 우는 소리 하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래서 더더욱 그 누구에게도 우는 소리를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꿈이 없어,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같은 넋두리는 더이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할뿐더러 내 얼굴에 내가 침 뱉기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우울은 어떠한가. 나는 우울에 대해서도 자격을 따지고 앉아있다. 번아웃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대 때 한창 감상적일 때는 우울함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었기에 은근히 그것이 좋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우울이라기 보다는 울적하거나 음울한 느낌에 가까웠던 것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확실히 이것이 우울감이라는 것을 안다.


우울하다니.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우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번아웃 때와 비슷하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누군가 우울해 하거나 심지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면 절대 저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생면부지 타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어째서 나에게는, 나에게만 이렇게 유독 독한 말을 내뱉고 마는 것일까. 왜 내 감정을 돌봐주지 않는 것일까. 왜 온전히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꼭 얄밉게 딴지를 거는 것일까. 예전에는 우울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우울할 자격을 따지는 게 아니라 당연히 나는 우울하지 않고 그럴 틈도 없이 참 쉽게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사람이며, 내가 우울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앞서 말한대로 울적함이나 음울함이지 우울이 아니고 단지 말하기 편해서 익숙해서 우울이라는 단어를 쓸 뿐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달라졌다. 우울함을 느낀다. 그랬더니 이때다! 하고 자격을 운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떠한 감정에 대해 자격은 필요없다. 그냥 그런 감정이 들었고 그렇게 느꼈을 뿐인거지, 그 감정에 대한 느낌에 대한 자격이라는 게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있다면 그 자격은 또 누가 부여할 건데? 말이 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참 끊임없이 자격을 들이대는 나도 참 나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내겐 우울이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사실은 파도처럼 덮치지 않았던 것일뿐,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나를 물들여왔다.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통 그렇듯 나 역시 자가진단에 자신이 있다. 지가 의사다 아주) 다만 인지는 하고 있다. 나의 일정 부분이 우울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가끔 그 부분이 엄청나게 자기 주장을 해대서 심신이 지치곤 한다. 오늘이 그랬다. 그래서 이렇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이것도 자기연민의 일종인가 싶어 (대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눈치를 보게 되긴 한다만, 더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하루종일 열댓번은 왈칵 왈칵 눈물을 쏟은 것 같다. 시원하게 울지도 못하는데 시도때도 없이 자꾸 그러니 무척 난감했다. 눈물을 삼키고 숨을 고르고 울지 않은 척 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모양인지, 약간의 두통이 있었고 씻기도 전에 마치 온탕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그래도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진짜로 따뜻한 물로 씻고 잘 준비를 하고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조금 울어서 콧물이 지지하다. 울면 제일 싫은 게 콧물이다. 코를 자꾸 풀어야 하고 코가 금방 헌다. 자려고 누워서도 울까봐 걱정이다. 웃긴 영상이라도 틀어놓고 눕던가 해야겠다.

우울할 자격같은 건 없어. 우울하면 그냥 우울한 것일 뿐이고 이 감정은 지나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또 오겠지. 그리고 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