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이고 가르치며 강요하는
"꼰대 다 되셨네요!"
얼마 전, 아끼는 후배에게 들은 말이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추구하고, 권위의식도 없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던 터이다. 자신이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가 다를 땐, 대부분 타인이 보는 것이 정확할 때가 많은데, 돌이켜 보면 나도 조금씩 꼰대가 되고 있었나 보다.
나이를 먹으면 이마에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에도 주름이 생기는 걸까? 그래서 세상과 사람들을 인상 쓰고 보는 꼰대가 되는 것일까? 이마의 주름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아직 꼰대가 되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꼰대라는 말은 많이 쓰는데, 정확한 개념은 모르겠다. 꼰대는 영어로도 번역이 안된다. '재벌'이라는 단어처럼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로는 전환이 되지 않나 보다.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 보니, 꼰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의 입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1. 1961년 동아일보 : 나이 많은 걸인과 하층민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되다.
2. 1966년 동아일보 : 연재소설 <서울은 만원이다>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
3. 1966년 경향신문 : '아버지'를 가리켜 또래 사이에서 쓰는 은어로 사용되다.
4. 1970년 경향신문 : KBS 연속극 <수다스런 계절> 에서 선생님을 낮추는 말로 사용된 후 유행되다.
[출처: 위키피디아]
정리하자면, 나이가 어린 대상에게 억지로 가르치고 강요하려는 어른을 낮춰 부르는 말이 지금의 '꼰대'가 된 것이다. 지금은 직장 내에서도 흔히 사용되는데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강요하는 상사'를 의미하는 것 같다.
꼰대의 내용
이러한 꼰대의 세계에도 단계가 있다. 먼저 내용에 따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르치고 강요하는 내용을 본인도 하고 있다면 초급이다. 윗사람이 직접 하면서 시키므로 조금은 답답하지만 이해가 된다. 고객과의 만남에서 항상 정장을 차려 입고 기본을 갖추는 상사가 직원에게 같은 수준의 행동을 요구하면 불편하지만 따르게 된다. 결과가 좋으면 직원에게도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시키지 않아도 따르게 된다. 가르치고 강요하는 내용을 본인 스스로는 할 수 없어 같이 하길 요구한다면 중급 수준이다. 약속 시간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약속된 시간을 어기게 될까 봐 알람을 부탁하거나 같이 움직이길 바라는 상사가 있다면 직원은 따르긴 하지만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은 지키지 못할 내용을 직원에게만 강요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상급이다. 직원을 설득시킬 수 없는 내용임을 알기에 더 강압적으로 이야기하고 가르칠 것이다. 물론 직원은 억지로라도 따르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꼰대의 영역
다음은 영역에 따라 생각할 수 있다. 직원의 업무에 관련하여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은 초급이다. 상사는 지식과 경험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급한 일정이 있다면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일에 대해 PUSH를 할 수도 있다. 직원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만이 생길 수 있지만, 일의 결과가 좋다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길 수도 있다. 신뢰가 쌓이면 비슷한 경우가 또 발생해도 상사를 우선 믿고 따라가게 될 것이다. 회사나 조직에 대해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은 중급이다. 성과와는 상관없지만 회사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나 특성에 대해 지나치게 강요를 하게 되면 직원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근태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복장에 관련하여 회사의 기준은 반드시 시켜야 하지만 그 이상의 과도한 요구는 회사 전체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직원은 따르긴 하겠지만 창의적인 사고를 이끌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삶에 관여를 하게 되면 정말 상급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유형이 있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상사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취향을 기준으로 강요한다면 직원은 근본적으로 회사에 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해 본다. 어느 조직에서나 시니어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젊은 구성원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속도를 낸다면 훌륭한 리더는 방향을 잡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꼰대라고 여기는 분들의 적절한 역할은 직원이 상사를 이해하고 상사는 직원에게 올바른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 꼰대의 정의를 정반대로 해보자.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대화를 해보자. 가르치는 대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강요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보자. 그리고 가르치고 강요할 내용은 본인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업무에 한하여서만 때에 따라 가르치고 강요하자.
쌍방향으로, 깨달을 수 있게,
자발성을 유도하는 리더.
본인 먼저 하고, 업무에 집중하는 리더
그래서 시간이 흘러 좋은 꼰대가 되었으면.
다시 후배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이제 꼰대가 다 되었다는 나는 지금 어떤 단계인가. 이전에는 쌍방향으로 소통을 했다면 조금씩 일방적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같이 배우고 성장했다면 조금씩 가르치려 들었다.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조금씩 강요 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초급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요구하였고, 업무에 대해서만 PUSH를 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나의 착각일지는 모르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꼰대가 아닌 좋은 선배이자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를 자각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