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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 느티나무 Dec 20. 2020

Netflix: <메리지 스토리>

Deal과 Discuss의 차이 : 세대를 거쳐 변치 않는 의사 불통

영화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플랏이 좋다며 기괴한 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아들이 꽂힌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다. <기생충>부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 5가지를 섭렵한 아이다. 기생충 영화를 보고 나서 상징에 대해서 얘기할 때 나 보고 한국 사람 맞냐며 자기는 서브 타이틀로 보고 나는 원어로 듣는데 어떻게 자기보다 모르냐고 했다.  나의 한국어 실력을 무시할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날카로운 눈이 있어 아들이 권해 주는 영화는 볼 만할 것이라 생각했다.


줄거리:

니콜은 LA에서 자라고 활동한 인디(알려지지 않은) 배우이다. 유능하고 성공적인 무대 감독 찰리를 만나 뉴욕으로 오고 그들 사이에 8살 난 헨리가 있다. 찰리는 인디애나 시골 출신으로 어려운 시절을 거쳐 성공적으로 뉴욕에 정착한 연극 팀을 맡은 무대 감독이다. 이혼의 과정을 그린 영화지만 원수 같은 사이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내내 서로에 호감과 존중을 잃지 않아 도대체 이혼하려는 이유가 뭔지 분명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아들 헨리에 대한 커스토디(custody)를 누가 가질지를 두고 싸우는 영화이다.


니콜:

이야기의 시작은 이혼 상담실에서 상대방의 장점을 열거한 종이를 들고 읽어 내려가며 시작한다. 찰리가 니콜의 장점을 진정성 없이 열거하자, 니콜은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중지시키며 이혼을 결심하고 아들, 헨리와 LA로 떠난다. LA에서 변호사에게 왜 이혼하려 하는지 말한다. "I want something better for myself", I didn't belong to my self", His house is his taste"라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줄 알았는데 결혼 생활에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며 집도 그의 취향대로 꾸며졌다고 절규한다.

이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되면서 묵직한 감정이 올라왔다. 미국으로 와서 결혼하고 지금의 집에서 살면서 처음부터 이사 갈 생각을 했었다. 내가 남편의 삶에 편입된 느낌이 싫어서였다.

 영화 초반에 니콜이 무대에서 연습할 때 찰리가 무대 감독이니까 일일이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고 지시한다. 일과 결혼 생활이 구분되지 않는 삶, 게다가 지시받는 삶에서 니콜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찰리:

찰리는 정리 정돈을 잘하고 불 끄는 것을 잊지 않고 챙길 만큼 꼼꼼한 타입이다. 성공한 남자들이 갖는 완벽 주의자 스타일이며 니콜의 가족으로부터도 여전히 사랑을 받을 만큼 붙임성이 있는 사람이다. 뉴욕에 일이 있는 찰리는 양육권을 가지려고 뉴욕이 아들 헨리에게 충분한 삶인지 증명을 하기 위해 LA로 왔다 갔다 이혼 법정을 오간다.


서로에게 나쁜 감정도 없고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만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기기 위해 서로에 대해 험담을 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소송에 드는 비용이 부자가 아닌 찰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오고 니콜의 소송비 까지도 30%를 지불해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에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양육권에 유리하고자 찰리가 렌트한 아파트에서 둘은 만남을 가진다.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파국에서 피어나는 의사소통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찰리는 결국에 이혼 소송 과정에서 느낀 심한 좌절감을 쏟아 내며 감정에 북 받친다.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는 비난을 시작한다. " 너는 칠칠치 못해, 네 엄마하고 똑같아, 너는 성공하려고 나를 이용했어"라고 말하자 엄마를 끄집어낸 것에 분노해서(이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네: 분노의 버튼이 눌려지는 말) " 너는 나를 독재자처럼 지배했어, 너는 무대 매니저하고 잤어, 너는 이기적이야, 일 밖에 몰라"라고 맞받아친다.


그러자 찰리가 "내가 사랑한 사람은 너뿐이야, 너는 한 번도 나를 인정한 적이 없어, 나는 무일푼에서 성공했어, 나는 일찍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는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은 것을 요구했어, 나는 잠에서 깰 때마다 네가 죽어 있기를 바랐어”라고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오열한다.(이 부분이 클라이맥스). 서로를 감싸 않고 흐느낀다.


그러면서 찰리가 말한다. 이것이 도대체  LA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고? 니콜은 결혼 후 뉴욕에서 살다가 언젠가는 LA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찰리는 그것이 의논(discuss) 한 것이지 계약(deal)을 맺은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항변한다.(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연상시키는 대목)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서로 다른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였다.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엉뚱한 것에서 원인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LA와 뉴욕은 물리적 거리 라기보다 둘 사이에 놓인 심리적 간극이 그렇게 멀다는 것을 상징한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남편, 이해와 존중을 받기 원하는 아내 사이에서 만들어 낸 의사 불통이 그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부부 사이에도 얼마나 많은 의사소통이 이루어 지기 힘든 간극이 있는지  바로 엊그제 리뷰를 했던 <매드 맨>과 비교가 되었다.

미드 센추리 시대보다 여권이 이룬 성장은 어마어마하다. 사실 이 영화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면 거의 99% 니콜이 양육권을 가지게 된다. 물론 챨리는 양육비를 헨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내야 한다. 재산도 절 반으로 나누고 이혼 소송 과정 중에 찰리가 수상한 상금 $650,000도 반으로 나뉘게 된다. 결혼 생활이 그의 창작성을 빛나게 해서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아내의 역할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 해도 부부 사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기술이라 부르는가 보다.


결말:

찰리가 UCLA에 직업을 얻어 LA로 돌아오고 핼러윈 축제에서 재회한 니콜과 찰리. 헨리를 데리고 가는 찰리를 불러 세워 그의 풀어진 신발 끈을 묶어 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재 결합을 할지 알 수 없으나 결말은 해피 엔딩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고 싶다. 찰리가 LA로 옮겨 옴으로 그들의 심리적 간극이 좁혀졌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cover image source from wikipi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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