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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 느티나무 Mar 19. 2021

[공정하다는 착각] by 마이클 샌들

Tyranny of Merit: 정치 엘리트에 대한 비판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재능이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커다란 동력이라고 생각했고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치러진 성과를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축하해주고 그로 인해 커진 파이가 전체에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미국에 거주하면서 부시 워커, 오바마, 트럼프 그리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동안 함께 했으며,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들의 부상을 지켜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무엇이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가'는 마치 화두처럼 존재하였고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오바마와 트럼프의 등장

2001년 911 테러가 나는 것을 티브이로 지켜보았다. '피터 제닝스'의 키 크고 훤칠한 목소리로 전해 듣는 뉴스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듯 처음에 믿기지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을 선언하던 결의 찬 조시 부시의 담화를 들을 때는 그의 소탈함이 좋았기에 분명 진정성이 있으리라 믿었다. 결국 대량 살상 무기를 찾지 못했고 2008년 이번엔 금융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젊고 패기 있고 하바드 법대 졸업한 오바마의 등장은 겉으로 보기 완벽한 어메리컨 드림의 상징이었다. 달변과 유머로 점철된 연설은 영감을 주었고 처참한 금융위기를 극복해 미국 경제를 다시 세우는 것을 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그렇게 빨리 회복되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공적 자금을 쏟아부어 무너진 자동차 회사를 다시 살렸다. 파생상품을 끝도 없이 만들어낸 금융가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납세자의 돈으로 면책(bailout)시켰다. 잘못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수백억 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은 아연 질색하게 만들었고 깊은 도덕적 상흔을 남겼다.


양적 완화를 통한 경제회생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돈을 찍어내기 시작하였고 그 많은 돈들이 유통되었으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어디에 선가 달러를 사들이는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값싼 물건을 만들어 내는 ‘중국'이었던 것이다.


트럼프 당선은 극적이었다. 누구도 그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으며 그의 당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동스러웠다. 지극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업가로 큰 사람이 저소득 층 백인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과 그는 공화당 소속인데 저소득층의 영원한 지지는 민주당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캐치플레이즈를 들고 나오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연설문을 프롬터에 띄워서 읽는 것이 아니고 직접, 그렇게 자주,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대화하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나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지난 40년간 세계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저 소득층의 좌절과 분노가 이렇게 뿌리 깊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의 분노의 언저리엔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시장에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는 ‘세계화(Globalization)'에 날개를 달아 주었고 양질의 일자리들이 빠르게 사라져 저 임금을 찾아 동아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들의 좌절을 정확히 꿰뚫고 있던 사람이 트럼프인데 그가 제안한 의료 계획은 결과적으로 워킹 클래스 지지자들의 의료보장을 축소하고 부자에게만 세금을 감해주는 아이러니를 낳았으나 그가 던진 '중국이 주적'이라는 시선을 사람들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능력주의를 배태시킨 종교적 관점

재능이 종교와 결합되면 양상이 더욱 복잡해진다. 어거스틴은 은총(grace alone)으로만 구원을 받는 다고 하였으나 의식이나 의례, 침례, 기도, 예배 참석, 희생적인 행위들이 보상을 생각지 않고 계속될 수는 없다.  캘빈은 이에 비해 모두가 신의 부름을 받고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구원의 징표라고 보았다. 일이 만들어내는 '부'는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으로 Calvinism= strenous work + ascerticism의 결합이다.

이 부분이 내가 미국에 와서 느낀 미국의 힘(청교도적 가르침: 열심히 일하는 것과 정직하게 사는 것)과 정확히 부합한다...


그런데 마이클 샌들은 재능 주의가 자본주의 시장으로 들어오자 성직자를 쫓아내고 일(소명)을 신성시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깔보고 약점을 포용하는 양심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신’의 적으로 보면서 미움과 경멸의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실날하게 비판한다.  


능력주의의 득과 실

미국인의 77퍼센트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독일인은 50퍼센트가 그렇게 믿고, 프랑스인이나 일본인은 근면이나 성실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마이클 샌들은 개인의 우선권이 존중되는 미국 사회에서는 불평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반면 유럽의 비관주의는 개인의 노력을 저평가해서 성공의 가능성을 폄하한다고 보았다.


로널드 레이건이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980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smart"라는 슬로건은 어디에나 들어갔다, '스마트 자동차, 스마트 무기, 스마트 학교, 스마트 영농 등등. 오마바 경제 자문단은 베트남 전쟁보다는 덜할지 모르나 월스트리트 친화적인 정책을 씀으로써 금융위기를 극복하였는데도 책임질 줄 모르는 정치적 판단의 실패가 트럼프 시대를 열게 하였다고 비판한다.


클린턴, 블레어, 오바마 지지자들은 학사나 석사 학위 소위자들이며 오바마는 기술을 신봉한 사람으로 민주사회 의견의 불일치를 정보 부족의 원인으로 보았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들 중에 하나 조지 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은 학위가 없고 하버드 동문인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펼칠 때 학위 없는 사람들과 협치 했다고 강변한다.


마이클 영은' 재능 주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라고 보았다. 재능에 따라 직업과 기회를 균등히 분배하는 것이 불평등을 줄이지 못한다고 보았다. 도덕적 정치적 과제를 살필 때는 두 가지를 살펴야 하는데 하나는 '정의'에 관한 것이요, 또 하나는 , 성공과 실패에 관한 태도'라고 하였다. 승자에게는 교만(hubris)과 불안(anxiety)을, 패자에게는 굴욕(humiliation)과 분개(resentment)를 안기는 재능 주의가 남용되면서 칭찬과 열망이 되었고 세계화를 통한 부가 공유되지 않고 저소득층의 분노만 양산한 것에 귀를 막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가난 보고서(poverty report)에 따르면, 선천적인 재능의 부족이나 타고난 환경 때문이 아닌 정부의 보조금을 이용하는 자발적 가난은 보조금에 기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복지 혜택이 가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양산한다고 한다. 건강을 돌보지 않은 저소득 비만층의 건강 보험을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는 중산층의 커뮤니티에서 책임지는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도 있음을 언급한다.

대학 학위의 명암과 공정 사회

아주 드물기는 하나 '힐빌리의 엘러지'에서 처럼 저소득 층의 출신이 예일 법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입학 자체가 아예 막혀 있다고  수는 없다. 현재 아이비리그 절반의 학생이 유색 인종이라고 하니 입학 사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졸업하고 나서가 문제이고 대학도 비즈니스하는 곳이니 이해는 한다. 현재 졸업생들이 어마어마한 빚을 짊어지고 사회에 나가는데 지난 15년간 학자금 대출 빚이 5증가하였고 2020 $1.5 trillion 능가한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의 1.8 퍼센트의 저 소득층 학생만이 top pay scale에 올라간다고 한다. 미국 역사상 위대한 쿼터백, 탐 브래디가 199번째 선발 순서를 갖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재능을 기반한 입학 사정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직업 교육이나 직업 재교육에 드는 비용은 higher education(대학 교육)에 쏟아붓는 교육 비용에 비해서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1%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계가 엘리트 재능 교육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것임을 일깨워 준다. 정작 시민 교육이 커뮤니티 칼리지를 중심으로 번창하고 있음을 지표에서 보여준다고 하니 말이다.



트럼프를 만들어 낸 것은 그의 지지자들이며 트럼프가 사라져도 트럼 피즘은 남는다고 하였다. 트럼프 현상을 가져온 이면에는 능력을 중시하는 아이비리그 엘리트들이 포진한 정치 금융 분야에서 승자 독식, 부익부 빈인빈이 만든 갭이 한몫을 하고 있다. 학위 없는 저 소득층들의 좌절이 보상받기도 전에 불어 닥친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트럼프에 대한 비판에 앞서 이를 가져온 그 이전 행정부의 엘리트들의 오만하고 무신경한 행태를 조명하고 비판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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