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평의 위험성>

by 유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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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은 어떤 행위인가. 평론은 본디 작품을 정의하고 그 작품의 가치를 분석하며 판단하는 행위일 것이다. 따라서 비평은 쉬운 행위가 아니다. 작품의 미세한 요소를 세세히 음미해야 하며, 자신의 판단에 주관을 가지되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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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평론가는 명확한 ‘전문성’을 가진 직업이었다. 자신이 평론하고자 하는 분야에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지식 역시 끊임없이 수정되고 학습해야 했다. 특히, 문학은 비평에 등단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평론가의 전문성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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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미디어 및 대중들이 접근하기 쉬운 영상매체가 보편화되며, ‘평론’의 아우라가 많이 간소화되었다. 이제 작품을 보는 누구나 평점을 매기고 비평을 할 수 있다. 또 문학을 제외하면, 명백히 ‘평론가’라고 불릴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도 많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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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현재 많은 평론가가 존재하는 영역은 영화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영화는 현대의 종합예술이고, 현재 예술 중 가장 큰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시장이다. 따라서 예술 중 가장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으니,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 역시 가장 많다. 문제는, 이 많은 평론가가 별점과 한 줄 평을 매기는 것에 많은 예술적 맥락이 삭제된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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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강일권은 평론에서 ‘별점’을 매기는 행위는 현대적 평론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이자 자극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영화의 영역으로 가면 하나의 요소가 추가된다. 바로 한 줄 평이다. 자극적인 별점 위에 영화를 극한으로 응축한 한 줄 평은 자극적이었던 현대의 평론문화를 더욱 자극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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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과 의도 끝에 탄생한 작품이 고작 ‘한 줄 평’으로 완벽히 응축될 수 없다. 좋은 작품일수록 더욱이 그렇다. 따라서, 이동진 역시 작품을 한계까지 응축해서 대중들에게 전하려다 보니 ‘명징하게 직조된’이라는 이상한 표현이 나오고는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 줄 평은 현대의 자극적인 별점 문화와 결합해 가끔 맥락이 삭제되거나 많이 불완전한 문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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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과 한 줄 평 문화를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현대에는 예술 작품을 넘는 자극적이고도 재밌는 것들이 사회에 산재하기 때문에, 별점과 한 줄 평으로 어느 정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만, 한 줄 평이 작품을 못 담아내거나 맥락이 삭제되는 경우가 꽤 있으니, 한 줄 평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할 필요성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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