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 다잡기>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by 유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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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단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보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으며, 노예도덕에 취해 자아가 사라지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원하는 극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렇게 사고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에 맞춰 인생의 궤적 역시, 보편과는 다른 삶을 걸어왔다. 이걸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행복보다는 신념을 추구했고, 애써 비명을 무시하기보다는 실체 있는 고통을 손에 쥐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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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게 산 지 5년이 지났다. 나는 무엇을 손에 쥐었는가. 무엇을 이뤄냈는가. 친구가 내게 가끔 농담으로 내뱉는 말이 괜히 떠오른다. "네 5년 노력의 결과는 신기루다" 이 말이 완전히는 틀리지 않게 들린다.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정치의 목적이 뒤바뀐적 없이 굳건히 나아갔고, 부조리한 세상에 망설임 없이 기투했던 마음은 순수했다. 솔직히 요즘 삶이 많이 흔들린다. 그토록 싫어했던 보편적 삶, 안락한 돈의 맛이 점점 달콤해진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신념을 하나씩 굽히는 거야."라고 말했던 몇 꼰대들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냄비 속의 끓는 물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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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쟁이'로 인정받는다. 시대에 칼을 토해내는 날카로운 글을 써내는 필진이 아니라, 기술적인 글을 쓰는 글쟁이로. 나는 인정받는다. 지식과 신념으로 무장한 전도유망한 청년정치인이 아닌, 유명 입시 컨설턴트로. 추구했던 가치와 삶이 하나, 둘 괴리된다. 평범한 행복을 찾는다. 비싼 옷을 사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안온한 삶에 행복해한다. 나는 내가 싫어하던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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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일 편한 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손에 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칼의 날카로운 단면을 쥐듯 꽉 쥔 두 손에 피가 철철 나더라도, 당장 내 손에 잡힌 칼을 풀어내는 것이 더욱 무섭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권력을 욕망함과 동시에 권력을 부수기를 욕망한다. 나는 계급상승을 욕망함과 동시에 계급 해체를 욕망한다.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욕망의 방향이 자신의 안온함과 쾌락을 위한 욕망보다는, 추구해왔던 사회와 정치를 위한 욕망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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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방향성을 다잡는데 필요한 건 ‘글’이다. 다시 펜을 쥐기로 한다. 메말랐던 혀끝과 펜 끝을 다시 적신다. 정치적이고 시대에 불을 지피는 글을 토해내기로 마음을 잡는다. 내 글은 내가 자랑스러워했던 무기이자 20대를 바친 열정의 증거다. 글로 정치적인 태제를 만들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내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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