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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 사진전「NŌTAN」

부산 장전동 스페이스 이신

by 정영현

75년간 사진가이자 사진학자로 활동한 필립 퍼키스는 실명을 앞두고 하루 한 장을 찍고 인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필립 퍼키스의 제자로 그의 사진 활동을 국내에 소개해온 박태희 작가는 필립 퍼키스의 마지막 사진 작업과 인터뷰를 담아 책 「NŌTAN」을 출간했다. 이번 전시는 「NŌTAN」에 실린 사진과 오리지널 사진을 합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3월 22일에 있던 박태희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는 가지 못했고, 지난 목요일이던가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에 다녀왔다. 주마간산 사진을 보고 전시 취지는 사진으로 찍어와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돌아왔다. 사전 정보가 없어서인지, 내 마음이 급해서인지, 얼핏 보았을 때에는 사진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내가 요즈음 시력에 문제가 있어서 야외에서는 폰카로 사진을 찍는 데도 애를 먹는지라, 작가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의 결의를 느끼는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 전시 취지 글을 읽다가 문득 이 전시의 제목인 'NŌTAN'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NŌTAN'은 동양화 용어인 '농담(濃淡)'의 일본어 발음을 로마자로 옮긴 것이었다. '농담'이란 '진하고 흐림'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묵화를 그릴 때에는 흰 종이에 검은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먹물의 농담을 조절하여 다양한 회색 톤을 만들어낸다.


보통 사진에서는 '명암'이라고 이야기하지 '농담'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흰 화면에 검은색(과 회색)을 정착시키는 작업이라는 면에서는 사진의 톤도 '농담'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흑백사진이라면 더욱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NŌTAN'에서는 '사진과 수묵화의 톤 개념을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전시장에서 찍어온 몇 장의 작품 사진을 보니, 그가 하루 한 장 찍고 인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추후 다시 시간이 난다면 다시 작품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곡해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 이 감상문을 올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침 어제 지인인 윤 모 사진작가로부터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책을 받았기에, 이걸 기회로 글을 정리해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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