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김씨의 무덤에 얽힌 사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이 2025년 4월이니, 〈파묘〉(2024)가 개봉하여 큰 히트를 친 지도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전통사회에서 함부로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은 매우 불길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무덤을 파헤쳐지면, 사자는 더 이상 안식을 얻지 못하고 원귀(寃鬼)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렇게 원귀가 된 영혼은 밤에 흐느끼는 소리를 내거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심지어 마을에 나쁜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산 지역에 전해지는 전설 중에도 파묘로 인한 원혼을 푸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문헌 상으로는 1740년에 편찬된 지방지인 『동래부지』, 그중에서도 '이문(異聞)'이라는 부분입니다. '이문(異聞)'은 그 고을에서 전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부분인데, 관청에서 편찬하는 지방지에서 '이문(異聞)'을 따로 두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연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효녀 김씨의 묘는 동래부의 동쪽 20리 남짓 운봉산 아래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이를 파헤쳤다.
전쟁이 끝난 후, 어느 날 밤 경상좌수사의 꿈에 김씨의 혼령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본래 동래부 효녀인 김씨고, 묘는 동래부 동쪽에 있습니다. 불행히도 왜적에게 묘가 파헤쳐져서 뼈가 드러난 지 이미 오래이고, 아무도 수습해 묻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원컨대 삼태기로 흙을 퍼서 드러난 뼈를 덮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좌수사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좌수사는 관속들에게 물었다.
"동래부에 살았던 효녀 김씨라고 있느냐?"
"예, 있습니다."
"그 묘는 어디에 있느냐?"
"운봉산 자락에 있습니다."
좌수사는 사람을 시켜 무덤이 있던 곳에 가보게 하였더니, 과연 도굴되어 뼈가 드러나 있었다. 이에 유해를 수습하여 옛 구덩이에 다시 안장하고 봉분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고 떠났다.
이날 밤, 김씨가 다시 꿈에 나와 고맙다고 하였다. 그 무덤이 아직 있다고 속되이 전한다.
이 전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평안도 철산의 「장화홍련 전설」이나 경상도 밀양의 「아랑 전설」과 비슷합니다. 여기서 김씨는 사후에 무덤이 파헤쳐졌는데, 장화 홍련 자매는 물에 빠져 죽었고, 아랑은 살해되어 길가 시신이 버려집니다. 이에 고을 원님에게 호소하여 원한을 해소한다는 결말이지요. 다만 장화홍련이나 아랑의 경우는 자신을 죽인 범인이 발각되어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하지만, 김씨는 무덤을 파헤친 왜적들에 대한 복수는 하지 못하고 다시 안장되는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김씨는 고을 원님이 아니라 수군 지휘관인 경상좌수사를 찾아가는 게 눈에 띕니다.
해운대구 반송동 북서쪽에 운봉마을이 있고, 그 뒷산이 바로 운봉산입니다. 이 이야기도 그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같은데, 김씨의 무덤이 현존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광주 김씨 세거지와 사당이 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운봉마을의 광주 김씨들이 임진왜란 무렵에는 동래에 살았다가 18세기 초에 운봉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동래에 살았다는 김씨는 어쩌면 이 집안사람일까요?
김씨가 죽은 시기는 임진왜란보다는 이전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설화에서는 김씨가 어떻게 죽어 효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해운대구 문화관광과에서 나온 『천년의 향기 해운대 이야기』(2011)이나 『반송향토지』(2011)에도 더 자세한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운대구에서 편찬한 『해운대 민속』(1996)에는 그 앞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부산 만호(萬戶) 김보운의 딸인 김씨는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그 부친(김보운)이 병들어 죽자 김씨는 동생에게 “너는 어머니를 섬기고 살아라. 나는 죽어 아버지를 섬기겠다”라고 하며 목을 매어 죽었다.
이 내용은 구술채록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누구에게서 채록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대대로 전해져 온 내용인지, 그냥 동네 재담꾼이 즉석에서 꾸며낸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만약 이 내용 대로 김씨가 부산진 만호의 딸이라면, 동래부사가 아니라 굳이 경상좌수사를 찾아간 게 이해가 되긴 합니다. 부산진은 경상좌수영의 관할이기 때문이지요. '좌수사'는 경상좌수영의 사령관이고, '만호'는 부산진의 책임자인 '첨사' 아래에 있는 관직입니다. 시간 나면 부산진 소속 만호 중에 '김보운'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씨는 시집을 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결혼을 한 여자들은 기록에 '누구의 부인 김씨'라고 남거든요. 아마 김씨는 나이가 어렸거나, 아버지 병구완을 하다가 혼기를 놓쳤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 여성이 저승에서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따라 죽었다니, 21세기를 사는 저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요. 아마 그 당시에도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주변에 효녀로 알려졌을 겁니다. 그리고 관속들이 그 이름을 아는 걸 보면 관청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정려(旌閭) 같은 걸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아무튼 죽을 때나 죽고 난 후나 참 안타깝다는 생각만 드는 사연입니다. 아무쪼록 지금은 편히 계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