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곁들여.
이 책은 말이 필요 없는 베스트셀러지요. 발간 이후 제가 구독하고 있던 북튜버-북캐스트, 심지어 이동진 영화평론가까지도 추천을 했던 책이었습니다. 마침 작년인가 보러 갔던 덕포시장에서 열린 어느 전시도 이 책을 주제로 삼고 있었기에, 돌아오는 길에 온라인으로 대뜸 종이책을 사버렸습니다만, 안 읽고 처박아두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크레마클럽(e북)을 쓰다 보니 이 책이 순위에 올라 있기에, 다운로드해서 오며 가며 듣기 기능으로 완독한 책이 되겠습니다. 물론 중간에 예스24 랜섬웨어 사태로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이 책은 룰루 밀러 본인의 자전적 내용에서 시작합니다. 지나치게 겸손할 것을 요구했던 아버지와 정서적 불안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았던 성장환경에서, 또 성장 이후의 불안정한 삶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확신을 줄 정서적 멘토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러다 생물학자이자 스탠퍼트 대학 초대 총장을 지냈던 데이비스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1851~1931)의 인생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생물학자, 특히 분류학자로서, 아직 종이 정해재지 않은 생명체들을 분류하는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즉, 세계 곳곳에서 생명체(주로 어류)를 수집하여 표본화하고 학명을 붙여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바닷속 생명체들은 인간과 무관하게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또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그들과 어울려 살고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이용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세상에서는, 과학자에 의해 표본화되고 라틴어로 된 학명이 붙는 의식을 치른 후에서야 비로소 그들이 '인간'에게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근대의 분류학자들은 이렇게 생명체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을 통해 공인된 계통도(생명의 나무) 상에서 그들의 자리를 부여해 왔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런 역할을 하는 대표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대학과 학계 내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갑니다.
작가는 조던의 삶을 추적해 가면서 이를 통해 자신에게도 합당한 이름이 붙고 확인과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점차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아가기 시작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비리의혹으로 '자신의 왕국'이 흔들리자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였습니다.
나아가 만년의 그는 우생학자의 주창자가 됩니다. 우생학은 유전 형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열등한 형질을 가진 인간들을 배제하고 우수한 인류만을 남기겠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나치 독일이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던 이론적 토대 역시 우생학이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을 다 쫓아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생학자들은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신병자·부랑아·마약중독자·고아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강제적으로 불임수술을 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정책은 미국이 나치 독일보다 먼저 시행되었고, 사문화되기는 했으나 아직도 미국 연방법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조던과 그의 동지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수단으로 믿었던 우생학의 이론은 시기가 지남에 따라 논파되었습니다. 조던이 평생을 바친 분류학 역시 많은 허점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조던의 주요 연구대상이었던 '어류'는 현대 생물학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하나 분류로 딱 구분되지 않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책의 제목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오며가며 점균류의 범주가 명확하지 않다던가, 조류가 공룡의 하위 분류로 들어갔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조던이 정신적 등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조던이 사실은 그렇지 못한 인물임을 알고 방황하게 됩니다.(마침 반려자와 이별한 상태이기도 했고) 그러나 우생학 정책으로 강제수용되고 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무언가를 규정함으로써 확고부동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 것이 진정한 안정을 준다는 것이죠.
작가 본인 역시 양성애자로서 자신을 인정하고 새로운 동반자를 찾아 드디어 안정을 얻습니다. 가치관이 달라 서먹했던 아버지와도 공존하는 법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생물 분류에 대한 사고방식 역시 새로운 멘토인 캐럴 계숙 윤(『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쓴 한국계 생물학자)과 만나 새로운 지식을 쌓게 됩니다.
(어쩌다 보니 내용 요약을 장황하게 써놓고 말았는데, 이상은 책을 보며 메모해 놓은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이라 순서나 용어가 정확하지 않은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에세이 느낌으로 풀어쓴 생물학 연구사에 대한 책인가 하고 생각했고, 1/3 정도 지점을 읽었을 때에는 자기기만이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인가도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 차례 지진과 함께 반전극이 연출되었습니다. 다 읽었을 때는 요새 잘 나가는 힐링 서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물 분류학도 마찬가지고, 어떤 대상을 규정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소외와 배제를 초래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저도 자주 겪는 일입니다. 적어도 고전적인 근대 역사학(소위 역사주의)은 고전적인 분류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한국사 연구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부분 그런 방법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예외가 아닌 게, 방금 전까지 제 주제에 대한 시기 구분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생물학에서 분류학(→분기학)의 흐름이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종의 다양성이 중시되는 측면은 역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도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이 책에 이어 자연스럽게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읽게 되었는데(마침 크레마클럽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움벨트(umwelt)'라는 용어는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도 새로운 시각을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주로 생물학이나 민속학·언어학 등에서 쓰이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주관적 환경/지각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객관적(보편적)인 환경 전체가 아니라 각 개체들이 직접 느끼는 주변 환경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근대라는 한 덩이의 문명 속에 뒤섞여버렸고, 근대학문의 틀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이를 분류하여 범주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화권은 각자의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그런 세계관을 통해 주변을 범주화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합리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문명은 그와 같이 '보편적인' 분류법을 벗어난 시각을 무시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조던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근대과학의 분류법이 객관성과 보편성을 보장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근대과학의 분류 기준은 결국 기본적으로 서구사회를 기반으로 한 근대문명의 움벨트에 불과합니다.
그런 면에서 '움벨트'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미시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탈피하는 데도 도입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움벨트 관련한 내용은 제 오독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이번 한 학기 강의를 쉬며 회복생활을 하는 중이고 그 사이에 제 처지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는데, 이 책이 정서적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 반년을 보내면서 대학강사라는 흔들리는 지위가 아니라, 나를 아껴주고 걱정해 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야말로 든든한 나의 토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마침 이 책을 읽고 보니, 공감되는 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꼭 생물학에 관심이 없는 분에게도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으로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