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타 인형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by 정영현

'하카타 인형'.

휴대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다른 설명 없이 '하카타 인형'이라고 메모해 놓은 게 보인다.

기억이 난다. 한 달 전인가 어떤 소설을 읽고 있는데, '하카타 인형을 넣은 유리 케이스'라는 구절이 나왔다.


15년 전인가, 박사과정 2학기를 마치고 휴학하며 학과 행정조교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조교 활동에 전혀 맞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사정이 어찌 되어 조교를 맡은 것이다.


그렇게 한 학기 만에 정신력을 소진하고, 여름방학을 빌어 잠깐 도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주일 뒤에 출항하는 후쿠오카 하카타행 표를 끊었다.(숙소조차 예약하지 않았다) 급히 학과장 및 교수들, 인문대 행정실 사람들, 근로장학생들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그리고 당시 친하게 지내던 어떤 분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다.


그분은 대뜸 하카타 인형을 사 올 수 있냐고 반농담 조로 이야기를 했다. 이 분에게 이렇게 귀여운 취미도 있었네, 싶다가도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하카타 인형은 수제 공예품이고, 최소 십만 원 단위는 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교는 인문계 대학원생 치고 경제적 형편이 풍족한 편이지만, 그땐 내 마음이 가난했다. 그래서 나도 반농담으로 뭐라고 대답했다. 사 오겠다고 했는지, 못 사겠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 후 나는 배편으로 하카타로 향했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뜻밖에 예산이 빠듯해서 돌아오는 배편의 유류할증료 초과분을 겨우 낼 정도였다. 사실 사려고 하면 신용카드로 인형을 구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형 가게 앞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마침 오봉(お盆)이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핑계고, 하카타 인형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본 적도 없다. 아마 당시엔 인형을 꼭 사줘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나는 교우관계의 폭이 넓지 않은 편이지만, 그때그때 소중한 인연들은 있었다. 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편은 아니다 보니, 대부분 그냥 흘려보냈다. 그들 중에는 상황에 따라 점차 소원해진 사람도 있고, 잠적하듯 모습을 감춘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연락은 안 닿지만 다들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내 주변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사람도 있었다. 무슨 상황에 봉착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들었고, 나름 도와주기 위해 애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 거리를 유지하려 했고, 나도 그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연락이 끊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소식이 뜸해졌다고는 생각했지만,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주변에서 그의 소식을 감춘 게 아닐까. 과연 그 사람이 살아 있는 건 맞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내가 소설을 읽다가 그 구절에서 메모를 해둔 것은, 향수와 함께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다. 어차피 잠적할 거라도, 그깟 인형 사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하카타 인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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