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글' 말고 '단단한 글'을 쓰기
브런치를 통해 저도 '작가'라는 호칭이 붙었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저런 글을 써온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만화가가 되기 위해 허접한 판타지 소설 같은 걸 써보기도 했고, 대학 시절에도 학과 홈페이지 게시판에 지금 보면 이불킥할 만한 역사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블로그인이나 네이버 블로그에 소위 '고찰'류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잡다한 지식을 수집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공기 중으로 날아가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에는 슬슬 논문이란 걸 쓰게 되었고, 픽션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로서 하면 안 되는 짓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소설을 읽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죠.
그렇다면 논문을 쓰는 데 숙달이 되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구조적인 글쓰기도 잘 안 되고, 퇴고에 게으르고,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고… 물론 이런 것은 결국 스스로의 논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므로 오롯이 제 탓입니다.
그런 중에도 제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서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이 술술 풀려나오고, 글 쓰는 재미에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대중서나 대중강좌용 원고를 쓸 때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간혹 몇몇 사람은 제 글이 괜찮다고 얘기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선뜻 글을 쓰기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건 여전해서, 말하자면 백지공포증이 있다고나 할까요. 어느샌가 저는 마지못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투병생활을 하면서 조금 더 많이 읽고 쓰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 혹은 휴대폰 메모장에 이리저리 메모해 뒀던 것, 페이스북에 짧게 올린 잡다한 글들을 정리해서 제대로 된 글을 써보자, 서모 작가님이 추천해 준 김에 브런치스토리를 내 놀이터로 만들어 보자.
어느새 브런치에 글이 8개나 쌓인 시점에서, 제 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 봅니다. 발행 전에 나름 숙고와 퇴고를 하고, 심지어 이미 발행을 해놓고도 여러 차례 수정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여전히 글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처음에 분명 '여기서는 대중 지향의 글쓰기를 해보자'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연구자 지향의 글을 쓰던 버릇이 남아 있습니다.
연구논문이나 보고서 같은 경우는 어차피 연구자들끼리 읽는 걸 전제로 글을 쓰니 일반 분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습니다. 그걸 또 일일이 다 풀어 쓰려다 보면 글이 장황해지게 되지요. 대중서 원고를 쓸 때, 수업자료를 만들 때 이미 여러 차례 겪었던 일인데 참 쉽지 않습니다. 결국 대중의 눈으로, 대중이 어떤 부분에 흥미를 느낄지 충분히 고려해야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문이나 학술서 말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읽는 글에서 내가 쓰는 글이 나온다'라고 생각합니다. 브런치에 와보니 글 잘 쓰시는 분이 정말 많더군요.
그렇다고 마냥 말랑하게만 글을 쓰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래도 읽는 분들이 무언가를 전달받았다는 느낌은 드리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딱딱한 글은 지양하되 단단한 글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작가로서 제 추구미입니다. 잘 익었지만 무르익지 않은 복숭아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나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형식적인 부분도 더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는 글을 더 읽기 쉽도록 문단 사이를 띄우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그렇게 다시 편집을 했습니다. 한 문단이 긴 편이라 제가 봐도 글이 빽빽했거든요. 그리고 이번 글은 해당되지 않지만, 될 수 있다면 이해를 돕는 사진도 찾아서 넣을 생각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께서 제 글을 읽고 댓글로 의견을 달아주시면, 참고하여 더 좋은 글로 다듬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