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혼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
한 달 동안의 신혼여행 마지막 코스는 두바이였다. 어둠이 깔린 런던 브릿지의 푸른 조명, 사르트르와 랭보의 단골이었다는 파리 생제르맹 거리 레 되 마고 까페(Les Duex Magots), 낡고 무서웠던 로마의 지하철, 나폴리 항구 근처 식당의 조개 파스타,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떼와 가면 모양의 악세서리를 파는 노점들.. 13년이 지난 지금, 이 모든 유럽의 추억보다 난 두바이 사막의 모래바람을 그리워한다.
결혼즈음에 방송국 다큐멘터리팀에서 막내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막내작가란 굶어죽기 딱 좋은 보수를 받고 월화수목금금금의 살인적인 업무강도를 정신력으로 견디는 존재다. 당연히 한 달 짜리 허니문을 준비할 물리적 심적 시간 따위는 없다. 돌아왔을 때 내 자리도 당연히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 강행했고, 해외여행은 둘 다 처음인 주제에 호텔과 비행기표, 현지 일일 투어 예약만 여행사에 맡겼다. 나머지는 느낌대로 발길이닿는대로!
준비 없이 떠나 3주간 온갖 삽질을 하며 이혼(?)의 위기를 수차례 넘기고 유럽을 떠돌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도착한 두바이. 택시를 타러 나가기 위해 문을 밀자 뜨거운 공기가 훅, 얼굴을 덮었다. 택시 기사 왈 낮에는 너무 더워서 쇼핑몰 외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5시나 되어야 연단다. 택시비가 20달러라길래 미화 20달러를 내밀었더니 우리가 내리자마자 기사는 엑셀을 밟았다. 트렁크에 모든 짐이 다 있는데! 죽기살기로 쫒아가 잡았지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아랍에미리트 화폐 디르함(AED)는 미국 달러의 1/4 정도 가격이었는데 우린 20AED를 20달러로 알아듣고 택시비를 4배나 더 준 거다. 그러니 마음 변하기 전 내빼려 했던 것. 지금같으면 공항에서 스마트폰으로 '두바이 환율, 택시비 눈탱이 안 맞는 법' 부터 검색했을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7년 5월이었고, 잡스가 say hello to iPhone 을 외쳤다지만 생산조차 하기 전이다. 귀국 하루 전 모든걸 잃고 국제 미아가 될 뻔한 고비를 넘기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