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이 끌려온 남편은 제쳐두고, 우리 모녀에겐 나름의 확고한 여행 목적이 있다. 쏘울양은 생애 첫 해외나들이, 그리고 일본 편의점 털기;;; 그리고 난....난 드디어 오늘 열 다섯 살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교토의 금각사에 간다.
어릴때 우리집엔 1950년생인 울 아빠가 무려 결혼 전부터 갖고 있었던 범우사의 오래된 세계문학 전집이 있었다. 깨알같은 글씨에 심지어 세로읽기. 초5 가을에 제인에어를 읽고 내 사춘기가 시작되었다면, 중학교 2학년 때 읽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겠다.
주인공 미조구치(주인공)는 ’음습하고 병약한 작은 짐승‘ 같은 미친놈(?). 그의 심리를 좇다 보면 어느새 나도 활활 불타는 금각사를 보고 있는 광인이 된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불을 질러 모조리 태워버리고 내 영혼을 결박하는 못난 생각에서 해방되리라... (급 ㅆrㅇ ㅣ 월드 감성?ㅋ)
작가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할복자살한 극우주의자다. 그래서 금각사, 를 생각할 때마다 난 설레임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다시 읽어보려 친정 갔을 때 찾아봤지만 이사오면서 버리셨다고. 어찌나 서운하던지. 열심히 줄 그어가며 읽던 내 사춘기의 흔적이 사라졌구나...
오늘 교토에 다녀오면,
사춘기는 진작에 끝이 났고 난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걸, 내겐 더이상 미조구치스러운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그래서 아쉬운건지 다행인건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될거다.
2023년 2월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