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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바람 Nov 17. 2023

1.  결심


수영을 ‘다시’시작하기까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집 앞 사설수영장은 비싼데다, 시설이 낙후돼 샤워실이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수준이었다. 깨끗하고 저렴한 시립 수영장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시간 맞춰 버스를 2번 갈아타고도 800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외딴 곳에 있다. 도시골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차 운전 필수, 일단 고질병(?) 운전 공포증을 극복해야했다.

대중교통으로 수영장 가는 방법을 연구한 흔적 ^^;;;
두 번의 교통사고 후 운전공포증이 더 심해졌어요 ㅠㅠ

그 외 극뽀옥-이 필요한  내적(?) 과제가 더 있었다. 오른쪽 정강이 전체를 길게 관통하는 선명한 두 줄의 수술 자국,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하협착이 심해 울퉁불퉁해진 제왕절개 흉터. 공중 목욕탕에 대한 포비아(phobia), 낙상 트라우마(trauma)는 그렇다쳐도 샤워실에서 내 벗은 몸에 꽂히는 누군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분쇄골절로 철심 이십여개를 박는 큰 수술 후 흉터가 남았습니다 ㅜ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간 동서울 수영장에서 처음 수영을 배웠다. 남자 강사는 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난 킥판으로 맞는게 무서워 죽을 힘을 다해 발차기를 했다. 수영장 물은 너무나 더러웠는데, 어느 날 똥 덩어리 하나가 둥둥 떠다니는 걸 목격하고는 토해버렸고, 더이상 강습에 나가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운 건 대학 때 학교 수영장에 다니면서다. 저렴했고, 깨끗했고, 여대 특성상 강사도 학생도 여자들뿐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운동보단 신촌의 술집을 훨씬 좋아했기에 그렇게 설렁설렁 가다말다 일 년을 초급반에서 보내고는 끝내  중급에 가지 못하고 그만둬버렸다.


자, 그러고나서 이십 몇 년이 흐른거다. 트라우마와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부여잡고 과연 난 다시 수영복을 입을 수 있을까?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얘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시작한 마흔 다섯 아줌마의 TMI 수영 ‘재’도전기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90년대에 출간된 이미라 님의 순정만화 제목입니다. :)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제 나이또래(40대)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혹시나 해서 적어둡니다. 만화의 내용과 이 글의 내용은 전혀 상관이 없지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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