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녁바람 Jan 16. 2024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

오래간만에 혼자 걸었다. 좀 걸어야했다. 엊그제 눈이 와서 그런지 길은 하얗고 눈이 부셨다.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도 경쾌하다. 삼십여 분 , 한 시간, 한시간 반, 하천 산책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늦은 오후의 볕이 반짝이는 윤슬을 만든다. 사람은 드물고 사방이 고요하다. 늘 그곳에 있던 물오리 가족 아기들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얼어붙은 물길 옆 모래밭 작고 동그란 발자국이 눈 위에 총총총.

호랭이 코트 입고 한 덩치 하는 이 구역 오야붕 냥이, 등무늬는 아메숏인데 색깔은 치즈인 냥이를 만나 나란히 몇 미터를 걸었다. 걸음걸음 미끄러질까 힘주어 딛느라 무릎이 좀 아픈것도 같지만, 잠깐 생각한다. 선물같은 시간이군.

그러나 때때로 마스크를 뚫고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훅 들어온다. 이 하천은 맑지 않다. 공장 폐수와 생활 하수가 섞여 이끼가 끼고 거품이 인다. 남편은 질색하는 이 물가를 그렇게 걸으며 계절이 세 번 바뀌었고, 너도 살고, 쟤도 살고, 나도 살았네.

모든게 완벽할 순 없어.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점은 언제든, 내 멋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