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떼의 맛

엄마의 카스테라

by 저녁바람

엄마가 빵을 만드는 날엔 온 집안이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집에 제빵기나 오븐은 없었다. 에어로빅에서 방문 판매 보따리 장수 아줌마의 시연회 - 엄마는 그걸' 홈파티'라고 불렀다 - 를 통해 구입한 빨간색 전기 프라이팬이 전부였다. 뚜껑부분에도 열이 전달되기 때문에 펼쳐서 프라이팬처럼도 쓰고, 닫아서 오븐처럼 쓸 수도 있었다. 엄마는 늘 쌀 씻을 때 쓰던 커다란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계란을 풀고 거품을 냈다. 흰자와 노른자를 조심스럽게 갈라 흰자만 바가지에 넣었다. 빠르게 휘저을 때 마다 타닥타닥, 거품기가 플라스틱을 치는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고 듣기 좋던지... 하얗고 뽀송하게 일어난 거품이 바가지를 거꾸로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으면 따로 담아두었던 노른자를 조심스럽게 섞는다. 이 때 설탕과 밀가루를 넣는데, 특별한 날엔 ‘제니 이모’에게 사온 미제 핫초코 가루나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넣기도 했다. 프라이팬 안에 버터를 바르고 반죽을 넣고 뚜껑을 닫고 타이머를 맞춘다. 45분이었나, 점점 공기 중에 퍼지는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 타이머의 불이 꺼지고 뚜껑을 열어 엄마가 직사각형 베개 모양의 노릇한 빵을 도마 위에 탁 엎어 놓는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따뜻한 빵. 카스테라였다. 얼른 손을 내밀어 귀퉁이나 바닥의 바삭하고 갈색 빛 도는 부분을 뜯어 먹고 싶지만 꾸욱 참고 기다린다. 엄마는 늘 갓 구워진 빵을 네모 반듯 하게 썰어 빨간색과 노란색 타파 통에 넣어 주셨다. 최근에 카스테라만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유행해서 그 비슷한 빵을 손쉽게 사 먹을 수 있게 됐다. 엄마의 빵은 사실 카스테라라고 하기엔 결이 두텁고 투박했다. 하지만 나에게 카스테라에 대해 말해보라 한다면 엄마의 빵을 맛의 기준으로 삼을 거다. 얼마 전 엄마에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 빨간 전기프라이팬을 버리셨다고 한다. 전기밥솥으로 도전하시겠다 했는데 옛날 그 맛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엄마의 카스테라를 손꼽아 기다리던 그 시절 나와 언니처럼, 열 살 내 딸이나 일곱 살, 아홉 살 조카들도 할머니의 카스테라를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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